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이름의 순서에는 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비중'의 크고 작음에 따라, 즉 주인공부터 이름이 쓰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순서'는 예민한 문제다. 원톱 드라마부터 여러 주연급 배우가 함께 등장하는 작품의 경우는 누굴 가장 먼저 써야 할지 제작사와 소속사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진다.
가장 큰 이유는 '자존심'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이름 순서에 따라 메인 주인공은 '1번' 서브 주인공은 '2번'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면 됐지, 그게 무엇이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배우들도 있겠지만 한 번 주인공으로 데뷔했다가 다시 두 번째에 오르는 것에 만족하기는 어렵다. 출연료 협상에서도 차순위 대상이 되거나, 시상식에서 '주연상' 후보가 아닌 '조연상'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업계에서 영향력이나 인기가 하락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순서가 뒤로 밀려나는 건 배우들이 용납하기 어려운 문제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홍보활동이 남아있는 가운데, '주인공도 아닌데 홍보 활동까지 해야 하냐'는 일부 배우들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작품에는 부담이다.

작품마다 해결 방안은 다 다르다.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가 '1번' 주인공이 되는데, 비슷한 출연료라면 '연차' 순서대로 한다. 그러다 '가나다' 순서대로 이름을 쓰자는 꽤 공평해 보이는 방안도 협상 테이블에 나온다. 홍보 매체와 방법 별로 다른 순서를 선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엔딩 크레디트 순서에는 뒤에 있어도, 포스터만큼은 이름을 동일한 크기와 위치에 올리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해당 작품에서 주인공의 비중은 아니지만, 줄곧 주인공을 해온 배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나온 또 다른 해결 방안이 '그리고 OOO'다. 순서는 맨 뒤에 붙지만, '그리고'라는 표현을 더하면서 더욱 주목받게 하는 것. 2010년대 주연급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는 한국 영화들이 선택한 방법이다. 영화 '관상'(2013)은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그리고 김혜수' 순서대로 이어진다. 영화 '표적'(2014)도 '그리고 유준상'으로 표기됐다. 이후 '그리고'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가 선택해 왔다.
최근 콘텐츠의 중심이 스크린에서 OTT 플랫폼으로 옮겨온 가운데, 여러 대작 드라마에서도 이처럼 '그리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달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파인:촌뜨기들'의 임수정과 공개를 앞둔 디즈니+ 드라마 '북극성'의 강동원이 바로 '그리고 OOO'이다.
'파인'은 1977년, 바닷속에 묻힌 보물선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근면성실 생계형 촌뜨기들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임수정은 천회장(장광 분) 아내이자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진 양정숙으로 분했다. 그가 '그리고'로 표기된 것은 극 중 비중, 캐릭터를 고려한 방안으로 보인다. '파인'은 류승룡과 양세종을 주축으로 한 '촌뜨기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양정숙은 극의 주요 배경인 목포가 아닌 서울에 있으며 '촌뜨기들'과 다른 결로 판을 흔드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임수정'으로 더욱 강조되는 모습이다.

'북극성'이 선택한 '그리고 강동원' 표기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북극성'은 포스터에는 전지현과 강동원의 이름이 나란히 표기되지만 홍보 자료에는 '전지현, 존 조, 이미숙, 박해준, 김해숙, 유재명, 오정세, 이상희, 주종혁, 원지안 그리고 강동원'으로 소개되고 있다. 주인공이 '그리고'로 표기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작품은 전지현 강동원의 두 톱스타의 만남으로 주목받았으며 특히 강동원이 21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여서 화제가 됐다. 전지현과 강동원의 '첩보멜로' 장르로, '투톱' 활약을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강동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이유다. 9월 공개될 '북극성'의 이야기가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지 방송가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