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아 선경도서관 팀장이 27일 최종현 SK그룹 창업회장의 기념 표지석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유빈 기자

"선경그룹 창업자이신 고 최종건 회장의 애향의 뜻을 기리고, 수원 지역 발전과 문화창달에 기여하고자 이 도서관을 수원시에 기증합니다."

지난 27일 방문한 경기도 수원 선경도서관 중앙엔 이같이 쓰인 표지석이 이용객들을 맞이했다. 이 표지석의 주인공은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다. 그는 형 최종건 창업회장을 기리기 위해 선경도서관을 설립하며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수원시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수원시 평동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사업을 시작한 그에게 수원은 일생을 함께한 동반자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인재 육성'이라는 형의 유지를 이어 SK의 뿌리인 수원에 선경도서관을 세웠다. 당시 도서관 건립에 투자한 규모는 250억원에 달한다. 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던 '시와이즈 자이언트'를 인수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

수원선경도서관 입구에 위치한 고 최종건 SK 창업회장 동상. /사진=최유빈 기자

최종현 선대회장의 애착도 각별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도서관 건립 당시 새벽녘마다 점퍼를 걸치고 공사장을 찾곤 했다. 그는 공정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정성을 기울였다. 그 발걸음이 쌓여 오늘의 선경도서관이 수원 시민의 자부심이자 SK 사회공헌의 원형이 됐다.


SK그룹 차원에서도 도서관 건립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9년 부지를 매입해 수원시에 기증하고 1995년엔 건물까지 기부했다. 도서구입비로 약 8억원을 들여 5만2127권도 함께 전달했다. 타 도서관의 4대 수준이다.

시설도 전국 도서관 중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선경도서관은 SK그룹에서 개발한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전산화 작업을 마쳤다. 책 대출과 반납에는 터치스크린과 바코드 시스템이 도입돼 '첨단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선경도서관 개관 당시 사서로 근무한 노영숙 전 관장은 "수원 시민들의 문화 수준을 20년은 앞당겨줄 최첨단 도서관이었다"며 선경도서관 20년사를 통해 당시를 회고했다.

1995년 수원 선경도서관 개관기념식. /사진=SK

이렇게 탄생한 선경도서관은 수원 시민들에게 배움의 터이자, 문화 거점이 됐다. 이날 도서관에서 만난 시민 고영자씨에게 선경도서관은 우연히 찾아든 피난처이자 배움터였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던 시절에도 이곳에서 아이들은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며 성장했고, 고씨는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고씨는 "선경도서관은 제게 키다리 아저씨이자 친정집 같은 존재"라며 "작은 아이 이름을 '선경'으로 지었고 지금은 SK에서 일하고 있을 만큼 이곳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선경도서관 건립은 최종건·최종현 형제가 강조해온 인재 중시 철학의 연장선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전력조차 부족했던 1950년대에도 공장 불을 밝히고 직원들에게 밤늦도록 글을 가르쳤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을 강조하며 사람을 기업 경영의 중심에 두었다. 그는 인재보국의 신념 아래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7일 선경도서관 1층에 마련된 최종건·최종현 회장의 기념 전시. /사진=최유빈 기자

최종현 선대회장은 일찍부터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72년에는 임야를 조성해 조림 수익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는 '수목경영'을 도입했고, 1974년에는 사재를 털어 민간기업 최초의 장학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지난 50년간 4000명 넘는 장학생과 세계적 학자를 배출했다. 그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최태원 회장은 2018년 '최종현학술원'을 세우고 사재를 출연해 국가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

김명수 수원시 도서관 사업소장은 "최근 선경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SK그룹의 후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번 행사가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30년을 함께 그려가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