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문화예술의 미래를 담을 수 있도록 제도·예산을 개혁하겠습니다. 현장을 만나보니 K-컬처가 겉으로 화려하지만 현장에서는 절망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이 정점이고 앞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많습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위기 아닌 시절이 어딨겠느냐,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해 극복하겠다"며 취임 한 달을 맞아 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모두의예술극장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 장관은 "K-컬처가 세계인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것은 단군 이래 처음 보는 현상"이라면서도 "이대로만 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지만,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두려움도 크다"라며 위기감을 경고했다.
가장 심각한 분야는 영화산업이다. 최 장관은 "간담회에서 들은 현실은 심각함을 넘어 처참했다"며 "현장에서는 몇 년 내 영화산업이 붕괴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올해 국내 관객 수는 1억 명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최 장관은 "순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영화는 20편도 되지 않는다"며 "업계 종사자들이 일할 수 있는 최소 물량조차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 장관은 투자 부족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이창동 감독님이 신작 제작을 위해 정부 지원에 선정됐는만 민간 투자를 못 구해 결국 지원금을 반납하고 넷플릭스로 갔다"며 "OTT 덕에 작품이 세계에 빠르게 알려질 수는 있지만, 창작자가 국내 투자를 못 받아 해외 플랫폼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너무 안타깝다"라고 지적했다.

법적 공백 문제도 언급했다. 최 장관은 "똑같은 과정을 거쳐 만든 영상물이라도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법에서는 영화가 아니다"라며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아도 법적으로는 영화가 아닌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 장관은 "2006~2007년 기준으로 2025년을 살고 있다"며 "AI 시대, OTT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틀을 그대로 두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예산 문제는 또 다른 걸림돌이다. 최 장관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하다"며 "문화예산을 GDP 대비 1.3% 수준에서 2.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제시했다. 그는 "정기국회에서 증액을 설득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해외 공동 제작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최 장관은 "유럽, 북유럽 국가에서 한국식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요청이 늘고 있다"며 "한국 로케이션 촬영을 원하는 제작사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장관은 "다른 나라들은 촬영 프로젝트 유치를 위해 적극 지원하지만, 한국은 예산이 없어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정책적 뒷받침을 예고했다.
케이컬처의 미래 전략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최 장관은 "꼭 '메이드 인 코리'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메이드 위드 코리아도 충분히 가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재정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또한 K-팝 공연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세계 팬들이 한국을 찾지만 정작 공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며 "일본은 1만 석 이상 공연장이 34개, 돔 경기장도 5개인데 한국은 공연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최 장관은 "BTS 콘서트 한 번이 1조20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낸다"며 "그런데 인프라 부족으로 공연조차 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적재산권 문제도 언급했다. 최 장관은 "글로벌 OTT와 AI 시대에 콘텐츠 IP 주권 침해가 심각하다"며 "각 부처가 나눠 맡다 보니 대응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신속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최 장관은 "K-컬처의 눈부신 성취 뒤에는 무너질 수 있는 위험요소가 존재한다"며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기에 제도와 예산, 인프라를 정비해서 문화산업의 위기를 지속성장이 가능한 기회를 바꿔놓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