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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27년부터 모든 국제선 항공편에 지속가능항공유(SAF) 급유를 의무화하기로 하면서 항공권 가격 인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SAF 가격이 기존 항공유보다 2배 이상 비싼 데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항공업계의 유류비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SAF의 국내 생산 확대를 위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지난 19일 'SAF 혼합 의무화제도 로드맵'을 공동 발표했다. 해당 로드맵에는 연도별 SAF 혼합의무비율과 종합적인 지원방안 등이 담겼다. 2027년부터 SAF 혼합의무비율을 1%로 적용하고 2030년에는 3~5%, 2035년에는 7~10%로 혼합률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SAF는 폐기름, 동·식물성 유지, 농업 부산물 등 친환경 원료로 만든 항공유다. 생산 전 과정에서 일반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가량 줄일 수 있어 항공업계에서 가장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탄소 감축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기존 항공유보다 2~3배 비싼 SAF의 가격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SAF 가격이 2.5배 일 때 혼합 의무 비율 1% 당 전체 국적사가 연간 부담하는 금액은 약 920억원에 달한다. 이 중 대한항공 부담액은 400억~450억원으로 추산된다.
SAF 혼합 의무화로 항공권 가격이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운항 비용의 30~35%를 차지하는 유류비가 늘어나면 항공사의 원가 부담이 가중, 유류할증료 명목으로 소비자에 전가될 수 있어서다. 실제 독일 루프트한자그룹, 프랑스 에어프랑스-KLM 그룹 등 해외 항공사들은 SAF 혼합 의무 적용 이후 좌석당 추가 요금을 소비자에게 청구하고 있다.
저비용항공사(LCC)는 유류비 부담이 더욱 클 전망이다. 특히 유럽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 타격이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SAF 혼합 비율을 2%로 의무화했으며 2023년에는 20%, 2025년에는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김광옥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동남아·중국 등 단거리 노선 위주의 LCC는 당장 SAF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유럽 노선을 운항하는 경우 당장 SAF 비용을 지불해야 해 승객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고정비 상승을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국제선 일부 노선에 국내 정유사가 생산한 SAF를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천-하네다 노선에, 현재는 인천-고베와 김포-오사카 노선 두 곳에 적용 중이다. 그러나 유럽행 항공기에 필요한 SAF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EU의 2% 혼합 의무에 따른 비용 부담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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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SAF 생산은 기존 정유 설비를 활용하는 코프로세싱(공동처리) 방식으로 대규모 증산에 한계가 있다. 5년 뒤 3배 이상 증가할 SAF 혼합 의무 비율을 맞추려면 당장 신규 생산 설비를 지어야 하지만, 1조원 이상의 막대한 초기 비용이 들어 대부분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한발 앞서 SAF 전용 설비 구축에 나섰다. 미국은 2022년 'SAF 그랜드 챌린지' 정책을 통해 2030년까지 연간 30억 갤런, 2050년까지 연간 350억 갤런의 SAF 생산 목표를 세웠다. 중국은 SAF를 국가 전략 사업으로 삼고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에너지 기업 산둥 산쥐는 지난 5월 연간 20만t 규모로 SAF 생산을 시작, 친저우 홍쿤은 내년부터 연간 30만t을 생산하는 SAF 전용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항공업계는 SAF 가격을 낮추기 위한 국내 생산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SAF와 같은 세계적 흐름은 특정 기업이 독자적으로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가 차원의 생산 인프라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 설비 투자를 위한 보조금 지원이나 녹색 펀드 마련 등을 통해 정유사와 항공사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SAF 혼합 의무화 확대는 국제적인 흐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SAF 혼합이 점차 전 노선에 의무화되면 장기적으로 관련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지원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