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일상이 됐다. '덕질'이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소비하는 행위를 뜻한다. 팬심은 더 이상 콘서트장이나 팬 사인회에 머물지 않는다. 출근 가방에 달린 키링, 책상 위 텀블러, 휴대폰 케이스 속 포토 카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요즘 팬덤은 음악을 듣는 것에서 나아가 일상 속에서 아티스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사들은 그 마음을 정확히 읽어냈다. 최근 엔터 업계는 '굿즈'로 불리는 머천다이징(MD) 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2025년 2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3029억원으로, 이 가운데 MD·라이선스 부문이 약 639억원(21%)을 차지했다. SM엔터가 운영 중인 오프라인 매장 '광야스토어'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릴 만큼 인파가 몰린다.
SM엔터 관계자는 "최근 MD 소비가 늘어난 이유는 팬들이 구매의 목적을 넘어 아티스트와 공유한 순간과 추억을 일상에서 이어가기 위해 MD를 찾기 때문"이라며 "팬들이 음악, 공연 등을 접한 후 느낀 감동을 일상에서 간직하고 SNS를 통해 MD를 전시하거나 커스터마이징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MD는 소유물의 개념을 넘어 각자의 취향과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이브 역시 같은 기간 연결기준 매출 7056억원 중 MD·라이선스 부문이 약 1529억원(21.7%)을 기록했다. 오프라인 스토어 대신 온라인 위버스 샵, 이벤트성 팝업만으로 판매되고 있음에도 20%대 비중을 유지하며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관련해 하이브 관계자는 "과거에는 앨범이나 투어 등 특정 이벤트 중심으로 MD를 선보였다면 점차 팬 분들의 개성과 취향 등을 고려해 일상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MD를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상 속 은은하게"… 굿즈에 열광하는 팬들, 왜?
12일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숲 인근 SM '광야스토어'는 평일 오후임에도 팬들로 붐볐다. 입구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캐리어가 줄지어 있고 매장 안은 각국 언어의 감탄사가 뒤섞였다. '인형 키링'부터 '포토 카드 세트' '브랜드 협업 텀블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이곳은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아티스트 세계관을 직접 경험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날 광야스토어를 찾은 송주아양(17)은 두 손에 앨범, 홀로그램, 멤버 띠부실, 트레이딩 카드를 가득 든 모습이었다. 그는 "앨범은 계속 팔지만 굿즈는 한정이라 비싸도 미리 사둔다"며 "요즘은 예쁘고 실용적인 인형 키링 같은 상품이 많아 일상에서도 자주 쓰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팬 이민선씨(25)는 "직장에서는 대놓고 덕질하기 어려워 캐릭터 키링이나 텀블러처럼 티 안 나는 굿즈를 사는 편"이라며 "일상 속에서 은은하게 아티스트를 응원할 수 있어 좋다"고 굿즈 소비 이유를 설명했다.
팬을 향한 새로운 연결고리 '굿즈'… 성장 동력으로
굿즈 시장은 더 이상 부차적인 수익이 아닌 K팝 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팬들에게는 일상에서 아티스트를 표현하고 연결되는 '작은 접점'이자, 기획사에는 음원·공연 중심 구조를 넘어 IP를 확장하는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
하이브 관계자는 "앞으로도 아티스트와 팬덤의 니즈를 고려해 더욱 의미 있고 이색적인 MD와 공간을 기획할 것"이라며 "더 많은 곳에서 팬들을 찾아가겠다"고 전했다.
SM 엔터 관계자 역시 "팬들에게 MD를 통해 아티스트를 더 가까이서 느끼고 각자의 방식대로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실용적 디자인의 MD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며 "기획 단계에 완성도를 높이며 팬들이 오래 간직하고 싶은 MD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했다.
결국 K팝은 굿즈 중심으로 변화하는 팬덤 소비문화를 바탕으로, 팬과 아티스트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