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은 지난 21일 주요 증권사 9곳을 긴급 소집했다.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매수세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개인의 해외 주식 순매수액은 10월에만 68억5499만달러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연초부터 11월까지 누적액은 43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현상의 일부만 본 피상적 분석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진짜 원인은 오래전부터 누적된 해외투자 구조 변화와 금융계정 악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거주자의 대외금융자산이 3분기 말 2조7976억달러로 집계됐고, 증권투자 잔액은 분기 대비 890억달러나 증가했다. 작년부터 이어진 해외투자 확대가 환율 체력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더 심각한 것은 10월 이후 외국인 자금이 유출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그간 개인의 달러 환전 수요를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상쇄했다. 하지만 외국인이 국내 투자를 정리하면서 환율이 급등했다. 여기에 연말 자금 경색과 은행권 달러 조달 어려움, 기업들의 해외투자 패턴 변화까지 겹쳤다. 그 여파로 지난해까지 1364.38원이던 연평균 환율은 현재 1410원을 넘어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학개미들은 왜 해외주식에 투자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수익률이 국내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리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미국 증시는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다. 투자자들이 수익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정부는 이런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서학개미 탓만 하고 있다. 국내 증시를 매력적으로 만들지 못한 정책 실패는 묻지 않고, 투자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문제 삼으면서 서학개미를 환율 급등의 주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뒷전이고, 외국인 자금 유입을 늘릴 근본 대책도 없다. 외환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개선할 장기 전략도 현재로선 보이지 않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정부가 금 모으기 운동으로 위기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했던 것처럼, 28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정부의 책임 전가에 속지 않는다. 서학개미만 탓하기 이전에 정부가 먼저 자신을 뒤돌아봐야 할 때다.
증권부 김병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