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사기가 펄럭이고 있다. /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최근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논쟁이 업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상 중간 허브 역할을 해온 계열사다. 금융감독원이 일탈회계 허용 중단을 결정하며 회계상 쟁점은 일단락됐지만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삼성물산이 일종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삼성생명이 중간에서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지분 8.5%를 쥐고 지배하는 구조이다. 이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가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은 5%에도 못 미친다.


삼성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박에 2013년 80여개에 달하던 순환출자 고리를 2018년 모두 끊어내면서 현재의 지배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금융회사(삼성생명)가 산업자본(삼성전자)을 과도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논쟁의 기저에도 이 같은 지배구조 문제가 깔려있다. 삼성생명은 1980~90년대 유배당보험 판매로 받은 보험료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사들였다.

삼성전자 주식 가치는 이후 꾸준히 증가했지만 삼성생명은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부채로도 잡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보험료가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인 삼성전자 지분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일탈회계가 중단돼 지분 가치가 대거 부채화되면 배당금 지급 부담이 커지고 이는 결국 삼성의 지배구조 흔들기로 이어진다. 삼성생명이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해당 지분 가치는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될 전망이지만 결국 삼성의 지배구조 이슈를 부각할 것이란 관측이다.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 한도를 총자산의 3% 이하만 보유하도록 한 '3% 룰'의 기준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바꾸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지속 논의 중인 점도 변수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취득원가로 돼 있어 총자산액의 3%에 미치지 않게 계산돼 있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생명은 시가를 기준으로 자산 3%를 넘어서는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팔아야 한다.

이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 될 수밖에 없어 삼성물산이나 총수일가가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10만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의 가치는 단순 계산상으로 50조원이 넘는다.

삼성도 오랜 기간 지배구조 개편을 핵심 과제로 놓고 해결 방안을 고민해왔다. 2022년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연구 용역을 맡기기도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밑그림 등이 공개된 것은 없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도 지난 2기 체제부터 지배구조 개편을 중점 과제로 추진했지만 결과를 내놓진 못했다.

결국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를 비롯한 각종 이슈를 잠재울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지난 5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을 발표할 당시에도 지배구조 개편이 재개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적분할을 통해 순수 지주사 성격의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새로 설립했는데 삼성물산이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을 처분한 후 이 자금으로 삼성생명이 처분해야 할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여 지배구조를 유지할 것이란 구상이다.

하지만 당시 삼성 측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비즈니스 목적의 인적 분할"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