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일탈회계 논란은 지난 1일 금융감독원이 예외적용 중단을 결정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보험업법 개정안(일명 삼성생명법)'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기준원은 2022년 말 IFRS17(보험계약) 도입 직전 회계 혼란을 막기 위해 예외적용을 결정했다. 유배당 계약자가 삼성전자 지분 매각으로 받을 금액을 명확히 표시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 2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삼성생명법을 발의했다.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삼성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차 의원이 발의한 삼성생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액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고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은 2014년 제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후 20·21·22대 국회에서 모두 재발의됐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8.51%로 지난 18일 종가 기준 약 54조2471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생명 총자산은 335조3069억원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총자산의 3%는 10조592억원, 삼성생명은 약 43조1879억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취득원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약 5000억원에 불과하다.
차 의원은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 주주와 유배당 가입자 모두에게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보험업권만 자산 운용 비율 산정에서 주식 등을 취득원가로 평가하는 것은 삼성만을 위한 특혜이자 관치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해당 법안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삼성생명은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보험부채를 '0'으로 잡았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경우 그룹 지배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삼성그룹은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삼성생명이 총자산 3% 이내로 삼성전자 지분을 줄이면 이 고리가 끊기게 된다. 이 경우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직접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하거나 삼성물산이 나서야 기존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삼성물산의 이익잉여금은 14조원대로 자금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국회에서 폐기됐던 삼성생명법은 일탈회계 논란이 다시 부각되며 재논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회계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유배당 계약자 권리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1980~90년대 유배당보험을 판매했다. 유배당보험은 보험사가 투자로 얻은 이익의 일부를 계약자에게 배당하는 상품이다. 당시 삼성생명은 유배당보험 가입자의 보험료로 현재의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였다. 40년 넘게 제기돼 온 문제가 삼성생명법과 맞물리며 22대 국회에서 논의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며 그룹 지배구조를 새롭게 재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뉴삼성' 기조를 이어가며 이 회장은 내년 3월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 이 회장에게 삼성물산 지분 180만8577주(1.06%)를 증여하면서 이 회장의 지분율은 20.82%로 상승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서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구축된 현재의 삼성 지배구조가 다시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