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 일도 대감집에서 해야한다."
매년 '억' 소리 나는 대기업의 연말 성과급 소식을 지켜보는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한탄이다. 기저에는 연봉을 비롯한 처우 부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준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벌어져 있다는 자조가 녹아 있다. 대한민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표현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임금, 고용 안정성 등 근로 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큰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뉜 것을 말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1차 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의 2차 시장으로 갈라져 있다. 두 시장 간 간극을 좁히기 어려운 데다 소득 불평등과 노동 의욕 저하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해결이 시급한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임금도 생산성도… 대기업에 못 미치는 중소기업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 또는 비정규직을 지칭하는 '여타 부문'의 월 평균 임금은 288만원으로 대기업 정규직 임금(497만원)의 57.9%에 그친다. 평균 근속연수 또한 대기업은 12.14년이지만 중소기업은 46.8% 수준인 5.68%에 불과하다.사회보장과 복지에서도 상당한 격차가 확인된다.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률은 대기업 정규직이 100%에 육박하는 데 비해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64~75%에 그친다. 퇴직급여와 상여금 수혜율도 대기업 정규직은 96% 이상인 반면 여타 부문은 66~73%였다.
2024년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중 대기업 정규직이 11.9%이고 여타 부문이 88.1%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다수의 근로자가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에 못 미치는 근로 조건에 놓여 있다.
생산성 부문에서도 차이가 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기업규모별 생산성 추이와 시사점 연구' 보고서는 종사자 299명 이하 중소기업의 1인당 생산성은 1억3800만원에 그친 반면 300~999명 규모의 중견기업은 2억7680만원으로 중소기업의 약 2.0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1000명 이상 대기업은 1인당 생산성이 4억8590만원으로 집계돼 중소기업 대비 3.5배 높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청년 구직자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소기업 취업을 고려하지 않는 응답자(356명)는 '연봉 수준'(55.3%)을 압도적인 1위로 꼽았다. 청년 구직자가 희망하는 월 급여는 평균 323만8000만원이지만 국내 중소기업 또는 비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이 288만원인 현실과 괴리가 크다.
청년층에서 취업을 포기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이중구조와 무관치 않다. 2025년 11월 15~29세 '쉬었음' 인구는 41만6000명으로 2020년 이후 5년 만에 11월 기준 최다를 기록했다. 원하는 일자리 부족(미스매치 심화)으로 구직 활동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중구조 놓고 노사 다른 접근… 정부 정책방향 변화해야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하다는 점엔 공감한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 방법엔 정반대다. 경영계는 한국의 노동법과 사회안전망이 소수 대기업 정규직만을 두텁게 보호하는 만큼 임금체계 개편, 유연근무제 확대, 배치전환 범위 확대 등으로 기능적 고용 유연성 제고해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임금체계의 경우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개편하고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활용 기간을 최대 1년으로 확대하는 등 유연근무제 요건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은 대기업 정규직은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을 통해 지금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포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노동계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선 오히려 근로자들의 단결권을 더욱 강화하고 하청 노동자의 처우와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용자의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제화 등도 요구하는 한편 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이 대부분 100인 이상인 점을 감안해 초기업(산별)교섭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이 경쟁·대립하지 않도록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2차 시장의 경쟁력을 키워 1차 시장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 지배구조 및 중소·중견기업 정책 전문가인 조병선 한국가족기업연구원장은 "한국은 특정 대기업에 대한 납품 의존도가 높아 중소기업의 교섭력이 약한 데다 낮은 납품단가에 따른 투자·임금·기술 축적의 악순환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며 이중구조가 심화하고 있다"면서 "인력·기술·금융·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