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보험사 'RBC 빨간불'

보험사 지급여력비율(RBC비율)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몇년 전부터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이에 따르는 역마진 우려가 제기되면서 금융감독당국은 보험사의 RBC비율 강화를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규제방안을 보완적으로 강화해야 하고 다른 규제와의 조율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RBC비율 높아야 위험에 대비

보험사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RBC비율은 준비금 및 보험료와 연관이 깊다. RBC비율은 쉽게 말해 보험사의 자기자본에 대한 규제제도다. 보험사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 발생했을 때 보험에 가입한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의무를 다하기 위해 책임준비금을 쌓아 놓아야 한다. 보험사들은 책임준비금 외에 추가로 순자산도 보유해야 한다.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책임준비금이 보험금 지급을 위한 최소한의 자금이라면 순자산은 2차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급여력비율 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난 1999년이다. 금융감독원은 기존에 사용하던 EU방식의 단순한 지급여력제도를 개편해 RBC비율을 도입했다. 시범운용기간을 거쳐 지난 2011년 4월부터 시행됐다.

RBC비율은 지급여력금액이라 불리는 가용자본을 지급여력기준금액(요구자본)으로 나눠 산출한다. 요구자본은 통상 1년 동안 99%의 신뢰수준 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손실예상액(Value at Risk, VaR)으로 측정한다.

현재 금감원 등 금융감독당국은 국내 각 보험사에 대해 RBC비율 150% 이상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RBC비율이 100%에 미달하면 단계적으로 시정조치를 내린다. 100% 미만 시에는 경영개선권고가 내려지고 50% 미만시 경영개선요구, 0% 미만시 경영개선명령이 내려진다.

일부 보험사 'RBC 빨간불'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 그러나

그렇다면 현재 국내 각 보험사들의 RBC비율 현황은 어떨까. 아직까지는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다만 금감원은 경기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RBC비율에 대한 감독 등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국내 보험사의 RBC비율은 315.6%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1% 상승했다. 업권별로 보면 생보사는 331.1%로 22.7%포인트 상승했으나 손보사는 6.2%포인트 하락했다.

생보사는 지난해 일시납 연금저축 판매 등이 호조를 보이면서 총자산이 14.2% 상승했다. 여기에 자본확충과 가용자본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RBC비율이 올라간 것이다.

이에 반해 손보사는 저축성보험 판매 호조에 따라 총자산이 증가했으나 요구자본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자본확충 등으로 인한 가용자본의 증가폭도 부족해 상대적으로 RBC비율이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국내 생보사의 평균 RBC비율은 331.1%였으며 손보사는 283.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금감원이 요구하는 수준을 상회하는 것이다. 다만 몇몇 보험사에서는 당국의 요구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KB생명의 RBC비율은 이 기간 158.2%였으며 악사손해보험 172.1%, 현대하이카 151.4%였다.

금감원은 "일부 보험사의 RBC비율이 권고기준에 근접하거나 하회하는 등 다소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금리·저성장 기조의 장기화 등 경제불안 가능성과 RBC제도의 규제기준 강화에 대비해 보험사가 증자 및 내부유보 확대 등의 자본확충 노력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제고하도록 지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재무건전성 규제, 실효성 높이고 자율에 맡겨야

이처럼 RBC비율에 대한 금융당국의 관리는 보험사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 중 하나다. 그러나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정성평가'를 강화해 통합 관점의 로드맵 제시가 필요하고 보험료는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12일 리스크관리학회와 공동으로 '보험회사 재무건전성 제도 평가와 개선방향'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당국이 재무건전성의 국제적 정합성을 제고하고, 저금리에 대항하기 위해 오는 2014년까지 RBC 요구자본량을 높여 보험회사가 자본을 확충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감독당국이 보험사 간 고금리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표준이율 인하와 공시이율 산식개정, 준비금의 적정성 평가방식을 개선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날 발표자로 참여한 보험연구원 김해식·조재린 연구위원은 "이들 제도는 모두 보험사의 가용자본이나 요구자본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RBC비율의 등락으로 나타나게 된다"며 "통합 관점에서의 규제 로드맵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은 각 보험사의 RBC비율이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당국의 제도에 따라 등락할 수 있어 이를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연구위원은 또 "최근의 보험료 인상 억제는 장래 보험료의 부족과 수익성 및 건전성 약화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보험료 결정은 가격 자유화와 시장경쟁에 따라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 건정성 규제의 정량평가는 미국 RBC제도에 기초해 구축됐다"며 "정량평가 개선에는 EU와 미국의 정량평가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실정에 맞는 RBC비율 강화정책에 대해서는 "보험사의 위험관리능력을 모니터링하는 정성평가 강화로 정량평가를 보완하도록 하는 것은 EU와 미국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적극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