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현재 지하경제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지하경제는 흔히 매춘, 마약, 장물, 밀거래 등 불법적인 경제 활동을 일컫는다.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탈루 소득을 지하경제라고 지칭한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부터 부족한 재원을 채우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상과제로 삼고, 국세청과 관세청에게 미션을 전달했다. 과세당국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탈세 세력을 잡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사채시장은 물론이고, 주류·제약 업계를 상대로 강도 높게 세무조사를 벌였다. 최근에는 고소득 전문직 및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기획 세무조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지하경제 규모는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 일부는 국세청 조사의 허점을 악용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지하경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성지인가. <머니위크>에서 현장취재를 통해 전모를 알아봤다.

 
우리나라 성인이라면 대부분 음용하는 기호식품인 술. 사회적 비용과 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반 공산품과 달리 면허제 또는 전매제를 채택해 주류의 제조·유통 전분야에 대해 엄격히 관리한다. 더욱이 술은 고세율 품목인 만큼 세수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제조관리와 유흥업소 등 연관업종의 세원관리가 필수다.

우리나라 역시 면허제를 도입해 제조와 유통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는 정책보완과 단속에도 독버섯처럼 사라지지 않고 피어오르는 '지하경제'에 우리나라 주류유통업계가 멍들고 있다. 부정주류·가짜양주 유통부터 무자료거래로 이어지는 탈세까지. 이러한 국내 주류유통업계의 지하경제를 심층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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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단속·대책 소용없는 공백지대
대한민국에서 주류와 관련된 '지하경제'는 거대한 공백지대다. "탈세를 하지 않으면 술장사 못합니다." 취재과정에서 들은 유흥주점 업주의 말이다. 유통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이 탈세와 관련된 이곳. 지금껏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표적 '지하경제'로 꼽히며, 보완책이 마련되고 단속이 이뤄졌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이에 정부와 국세청은 그동안 주류 무자료거래 등 부정주류 유통과 가짜양주 판매방지를 위해 지속적인 행정지도 및 단속을 하고 제도를 보완해 왔다. 정부는 대표적 탈세의 주범으로 꼽히는 양주의 불법거래를 뿌리 뽑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주류유통정보시스템을 본격 도입했다.

술병에 고유 인식번호를 부여, 무선주파수 인식기술 전자태그(RFID)를 부착해 거래 단계마다 모든 유통정보가 국세청 전산망에 기록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술의 제조에서 최종 소비단계까지 유통과정을 추적할 수 있고 가짜양주도 식별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전자태그 도입과 정기적인 단속 강화 등 국세청의 노력에 힘입어 주류시장에서 무자료거래가 많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머니위크>가 취재한 곳에서는 세금을 적게 내거나 포탈을 목적으로 하는 부정주류, 무자료 주류거래가 보란 듯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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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젓이 유통되는 부정주류
지난 8일 밤 12시. 서울의 대표적 유흥가 밀집지역으로 꼽히는 북창동의 한 유흥주점을 찾았다. 이곳은 시작부터 탈세가 이뤄지고 있었다. 지배인은 "현금으로 결제하면 45만원, 카드로 결제하면 50만원"이라며 현금으로 결제할 것을 종용했다.

또한 이곳에서 제공된 A양주에는 정부가 도입한 전자태그를 찾을 수 없었다. 지배인을 불러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다. 지배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면세제품이기 때문이라는 것. 면세주류는 부정주류 중 하나인데, 그는 단체관광객을 통해 면제제품을 들여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제품을 정상 도매상을 통해 공급받으면 한병에 11만원이 넘지만 면세주류는 6만원 선에서 공급받을 수 있다"며 "이렇게 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손님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면세양주를 판매하는 가장 큰 목적은 탈세다. 무자료제품이기 때문에 매출로 잡히지 않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공급가가 낮은 만큼 마진도 높일 수 있어서다. 이러한 무자료제품들은 대부분 주류유통업체와 지입차주가 결탁해 시중 유흥업소에 공급한다. 지입차주란 무면허인 자가 자기차량을 주류도매상 명의로 위장 등록해 도매상으로부터 무자료주류를 매입, 본인이 계산한 후 거래처에 세금계산서 없이 판매하는 중간상을 말한다.

◆ 남은 술 섞어 새 양주로 탄생

지배인을 통해 들은 부정주류 유통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손님들이 먹다 남긴 양주를 섞어 완벽하게 새 제품같이 만든 후 다시 손님에게 내놓는 업소도 많다는 것.

만드는 법도 간단했다. 고무재질의 천을 이용해 병 입구를 감싸 공기를 차단시킨 후 압력을 이용해 술을 채우면 고급 양주에 키퍼장치가 돼 있어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때 고급 양주병 입구부분에 이쑤시개를 몇개 끼운 후 술을 조금씩 부으면 술이 이쑤시개를 타고 들어가 꽉 채워진 새 양주로 둔갑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시중에 유통되는 양주 중 '임페리얼' 제품을 제외하고 모두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또한 가짜 양주 제조용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캡틴큐'와 '나폴레온'을 이용, 앞서 설명한 방법으로 가짜 양주를 만들어 시중에 유통하는 이들이 아직도 버젓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전자태그도 자석만 있으면 무용지물

이처럼 먹다 남은 술을 혼합하거나 가짜 술을 제조해 유흥주점에 공급하는 구조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이유는 정부가 가짜 양주 유통을 근절하기 위해 내놓은 전자태그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묻자 지배인은 콧방귀를 뀌며 한바탕 웃었다. 그는 진짜 양주임을 증명하는 전자태그도 믿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전자기기로 전자태그를 지지면 기능이 상실돼 국세청에서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것. 충격을 받은 기자가 "정말이냐?"고 묻자 그는 자신의 가게에 있는 무적(無籍)상태가 된 양주병을 보여줬다. 이를 바코드기로 찍어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지배인은 이러한 부정·가짜 양주가 유통되는 이유에 대해 "결국은 돈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접대부를 고용할 수 있는 1종 유흥업소는 부가세 등을 포함해 연간 수입의 약 40% 이상을 세금으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문을 닫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