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인 A씨(36)는 최근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직장과 가정 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 신경정신과에서는 가벼운 우울증이라며 처방전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쉽게 약을 사먹을 수 없었다. 혹시나 우울증 증세가 기록에 남아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을까봐서다.

#2. 은퇴 후 자영업을 이어가던 B씨(42)는 공항증을 앓아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공항증 치료에 사용한 병원비를 과거 가입한 실손의료비로 처리하기 위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B씨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했다. 공항증 등 정신질환은 실손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이유에서다.

두 사례처럼 증상이 가볍더라도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은 실손의료보험 등에 가입할 수 없다. 또 정신질환에 걸렸을 경우 이와 관련한 병원비를 보험금으로 청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가벼운 정신질환을 겪은 소비자에게도 실손의료보험이 지급되게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보험업법 시행령 및 시행세칙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개정되는 주요 내용은 실손보험의 보상범위를 정신질환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정신질환자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개발하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한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보험업법 개정안과 함께 정신질환자도 가입이 가능한 실손보험상품을 개발하도록 지도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보험사 '우울증·공황증 보험'에 대략 난감, 왜?

◆현행 약관, 환자 차별 야기

금융당국이 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개선방안 권고에서 비롯됐다. 지난 2월 권익위는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정신과질환 진료는 보상이 제한되는 현행 규정을 개선하도록 금융위원회에 권고했다.

현행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은 정신질환자를 보상대상에서 제외한다. 특히 단순하거나 일시적인 불안증, 불면증, 경증우울증, 성기능 이상 등 가벼운 치료에 의해 완치될 수 있는 질병도 보상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측은 "이번 제도개선방안이 수용되면 경증정신질환과 아동의 정신과 진료 등의 경우 실손의료보험의 보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제도변경은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보험업법 시행령 및 시행세칙 개정 추진과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는 "정신질환자들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며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벼운 정신병 보험가입 거절 못한다?

지난 2월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가벼운 정신질환을 겪은 소비자에 대해 보험가입을 거절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면장애, 우울증 등 가벼운 정신질환은 현대인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환만으로도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개정안은 정신질환을 이유로 보험상품 가입이나 갱신, 해지와 관련해 피보험자를 차별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보험가입을 거절할 경우에는 보험사 측이 이를 입증하도록 했다.

신의진 의원은 "단순히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보험가입을 거절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는 명백한 차별행위"라며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이 같은 차별을 받는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정신질환자 보험금 지급과 가입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되자 아예 정신질환자가 가입할 수 있는 실손의료보험을 만들도록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당국이 법안 개정과 함께 정신질환자가 가입할 수 있는 '정책성상품'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상품개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신병을 소재로 다룬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사진제공=SBS
정신병을 소재로 다룬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사진제공=SBS

◆법 개정도 두려운데 상품까지 만들라고?

이와 관련해 보험사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정신질환에 보험금을 지급하고 보험가입 거절도 못하는 상황에서 전용상품까지 만들게 한 것은 '사면초가'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보험사들이 난감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손해율 때문이다. 가벼운 정신질환으로 인해 발생한 병원비를 보상해주면 지급보험금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정신질환의 경우 지급보험금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보험사마다 정신질환에 대한 경험통계가 전무하다는 점도 상품개발을 어렵게 한다. 국내 대부분의 보험사들은 정신질환에 대한 보험금 지급내역 등 경험통계가 없다. 통계가 없다보니 손해율을 예측할 수 없어 보험료 측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보험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울증이나 강박증, 공포증 등의 정신질환이 최악의 경우 자살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까지 보장해야 할 경우 보험료 지급액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자살 시에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을 악용할 소지도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지난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자살 원인은 정신적 문제(29.5%), 질병(23.3%), 경제적 어려움(15.7%)순으로 조사됐다.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자살보험금 지급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보험상품이 출시되면 보험금 지급액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정책성상품 성격상 출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