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전세금을 1억원 올린다고 해서 은행에 물어보니 추가대출이 안된다고 해요. 예전에 살던 집을 세줬는데 1주택자 대출규제를 받는 거죠. 집을 팔려고 몇천만원 깎아서 내놓아도 빌라다 보니 사는 사람이 없고요. 초등학생 둘까지 네식구를 데리고 지금보다 작은 집이나 먼 변두리로 가야 해요.”
얼마 전 만난 지인에게 집 걱정을 듣고 있자니 한숨이 났다. 국내 최고기업으로 손꼽히는 S그룹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그가 전세금 1억원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룬다니 얼마나 많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집 때문에 고통받을까.
그는 “대기업 다닌다고 당장 1억원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면서 “정부나 민간 조사기관은 전셋값이 떨어졌다고 발표하는데 현실은 아니고 대출은 안되고 이게 정부가 외치던 ‘주거안정’인지 진심 화가 난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2년차, 부동산대책이 연이어 발표되며 역대 어느 정부도 못한 ‘집값 안정’을 드디어 이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스스로 내린 평가다. 서울 아파트값이 4주 연속 내리고 전셋값도 국지적인 하락세를 보이지만 정부의 “집값이 안정됐다”는 셀프칭찬에는 여러 사람이 눈살을 찌푸린다.
주위를 둘러보면 집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천지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올라서 고통 받고, 집값은 찔끔 내렸는데 대출한도가 줄어들어 여전히 집을 살 수 없고, 노후대비를 위해 전재산을 투자한 부동산이 세금폭탄이 돼 돌아오고…. 이게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과 얽히고설킨 국민들의 현실이다.
물론 정부가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한 데는 명분이 있다. 부동산거품을 조장하던 다주택 부자들의 투기를 막아 서민 주거안정에 힘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계청 조사결과를 보면 국민의 44%는 무주택자, 41%는 1주택자다. 즉 부동산투기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국민 대다수가 15%의 다주택자 잡기에 혈안된 정부정책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최저기준의 삶에 못미치는 주거빈민, 이를테면 고시원 이용자나 재건축·재개발로 밀려나는 이주자 등이 정부 공공임대주택의 도움조차 못받는 문제가 있다. 정보의 소외와 높은 임대료 때문이다. 최근 고시원 화재로 숨진 사람들은 한달에 몇만원 더 싸다는 이유로 창문 없는 방에 살다가 생을 마쳤다. 재건축에 반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30대 청년도 있다. 이들 모두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이다.
정부가 더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할 문제는 강남 수십억짜리 아파트가 1억~2억원 떨어진 게 아니다. 이런 숫자에 목맬수록 정책과 국민의 주거현실은 점점 멀어진다.
[기자수첩] "집값 안정" 정부의 셀프칭찬
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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