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와 이용자 간 갈등은 최근 넥슨의 PC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발생한 ‘확률형 아이템’ 논란으로 공론화됐다. /사진=넥슨 제공
게임업계와 이용자 간 갈등은 최근 넥슨의 PC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발생한 ‘확률형 아이템’ 논란으로 공론화됐다. /사진=넥슨 제공

“유저 배신에는 트럭선물”… 열혈 게임팬들 최고 ‘안티’ 됐다


게임업계의 고름이 터졌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소통을 통해 사후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보상을 지급하고 사태를 끝내려는 업계의 태도에 이용자가 분노한 것이다.
수년 간 진정한 소통 만을 기다려오던 이용자가 이번엔 직접 대책 촉구에 나섰다. 게임사에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트럭을 보내는 이른바 ‘트럭 시위’를 벌였다. 디스플레이에는 “유저 기만 이제 그만!” “겉으로는 단풍이야기 뜯어보니 바다이야기”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 담겼다.

지난 1월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페그오)를 시작으로 한국 대표 게임사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은 모두 이용자가 보낸 분노의 트럭을 맞이했다. 한때 게임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던 이들은 왜 돌아서게 됐을까.

확률형 아이템은 유료 재화를 지불할 시 일정한 확률로 뽑을 수 있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확률형 아이템은 유료 재화를 지불할 시 일정한 확률로 뽑을 수 있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수면 위로 오른 불신… ‘확률형 아이템’ 논란 뭐길래

게임업계와 이용자 간 갈등은 최근 넥슨의 PC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발생한 ‘확률형 아이템’ 논란으로 공론화됐다.
확률형 아이템은 유료 재화를 지불할 시 일정한 확률로 뽑을 수 있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다만 이 확률이 상황에 따라 변동되는 것 같다는 이용자들의 의혹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이를테면 게임 내 서버에 특정 아이템이 3개만 존재하도록 설정됐다면 해당 아이템 획득 확률이 1%라도 그 3개가 모두 이용자에게 귀속되면 이후부터는 획득 확률이 0%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특히 넥슨이 2월18일 자사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환생의 불꽃’ 업데이트 관련 공지글을 계기로 이같은 이용자들의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졌다. 이 글은 무기에 추가성능을 부여하는 아이템인 환생의 불꽃에 모든 종류의 성능이 ‘동일한 확률’로 부여되도록 수정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전까진 확률 조작이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 탓이다.

한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는 "넥슨은 2019년 고객 상담을 통해 직접 ‘특정 성능의 부여 여부에 따라 타 성능 부여 확률이 결정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번 공지글을 통해 2019년의 답변이 사실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함으로써 유저의 신뢰를 걷어찼다”며 "단순히 ‘환생의 불꽃’만이 아닌 큐브 등 다른 확률형 아이템에도 추가적인 확률 조작이 의심됐다”며 "더 이상 사측을 신뢰하기 어려워졌다"고 질책했다.

확률형 아이템 의혹이 사실일 시 피해 규모에 대해선 “휴면으로 추정되는 계정을 제외했을 때 이용자 1인당 평균 1년 과금 결제액이 3000만원으로 예상된다. 조작이 사실이라면 피해 규모가 적지 않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비슷한 시기 게임업계가 이상헌 의원(더불어민주당·울산 북구)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개정안에 반발한 것을 계기로 업계를 향한 게임 이용자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이 법안은 뽑기 확률 정보 공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가운데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이 부회장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게임산업협회가 “확률정보는 영업비밀”이라며 법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 게임3사 앞에 전광판을 단 트럭이 등장했다. 사진은 넥슨 본사 앞 트럭. /사진=강소현 기자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 게임3사 앞에 전광판을 단 트럭이 등장했다. 사진은 넥슨 본사 앞 트럭. /사진=강소현 기자

“확률형 아이템? 기폭제일 뿐” 트럭시위 진짜 이유는…
다만 확률형 아이템은 기폭제가 됐을 뿐 게임업계를 향한 이용자의 불신은 이전부터 계속됐다는 지적이다.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용자의 분노가 쉬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실제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 게임3사 앞에 전광판을 단 트럭이 등장한 건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공론화되기 전인 올해 초부터다. 각 게임의 이용자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시위 참가 인원을 모집하고 트럭 대여와 랩핑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했다

시작은 넷마블의 ‘페그오’에 대한 트럭시위였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1월 혁명’으로 불리는 이 시위는 넷마블 측이 명확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출석 이벤트를 4일 만에 돌연 중단하면서 발생했다.

다만 이는 표면상 드러난 이유일 뿐 그동안 운영진에 쌓인 분노를 한번에 표출한 것이라는 게 페그오 이용자의 주장이다. 평소 버그가 발생했다 등의 이용자의 지적에도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제시하는 대신 "죄송하다" "약속한다" 는 기계적인 답변을 반복하는가 하면 국내 이용자를 해외 이용자와 차별 대우하는 운영진에 불만을 느껴왔다는 것이다.

이어진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트럭시위도 넷마블과 결을 같이한다. 메이플스토리로 곤혹을 치른 넥슨만 해도 비슷한 논란으로 수차례 물의를 빚는 등 수년 전부터 사용자의 지적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일례로 환생의 불꽃과 유사한 '마비노기'의 확률형 아이템, 세공 도구을 두고 2017년부터 특정 성능이 누락된 것 같다는 이용자들의 지적이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넥슨 측은 "문제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2019년 넥슨 측은 "아이템의 특정 성능이 누락돼 얻을 수 없는 것을 확인했다"며 뒤늦게 오류를 인정한 바 있다.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사진=각 사 제공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사진=각 사 제공

엔씨 영업이익, 리니지M 출시 전후로 773%↑… “유저 신뢰 기반한 생태계 조성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용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게임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확률 공개는 무의미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영진 청강대 교수는 “이번 사태는 게임사가 공정함을 요구하는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부분이 큰 것 같다. 여전히 비즈니즈 모델이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 탓에 확률정보를 영업비밀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온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국내 게임 산업의 현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게임산업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에 따른 수입이 절대적이었다. 엔씨소프트의 사례만 봐도 확률형 아이템의 도입 전후 영업이익 차이가 큰 폭으로 난다. 2017년 2분기 376억원에 불과했던 분기영업이익은 확률형 아이템을 주요 수익원으로 하는 리니지M 출시 이후 3분기 3278억원으로 773% 증가할 정도였다.

위정현 게임학회장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의 반발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점을 게임업계가 명심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불신에 차 게임을 떠나는 이른바 '게임난민'이 폭증하고 있는 만큼 게임업계의 신뢰 회복이 시급해 보인다. 김영진 교수는 “두터운 유저 층의 도움을 받았던 게임업계의 반성과 개선이 필요한 때다”라고 조언했다.


강소현 기자 [email protected]

게임이란 가면을 쓴 사행성의 늪


국내 게임업계 고질병이었던 확률형 아이템 관련 논란이 곧 종착역에 다다를 분위기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국내 게임업계 고질병이었던 확률형 아이템 관련 논란이 곧 종착역에 다다를 분위기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는 월드컵 때마다 ‘경우의 수’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는 한 ‘확률’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이다. 도박은 물론이고 인류의 놀이 대부분에는 이런 확률적인 요소가 크든 작든 가미돼있다. 따지고 보면 윷놀이도 확률 싸움이다.
확률이 게임업계와 국회까지 시끌시끌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때문이다. 그 사행성 때문에 이용자의 과소비를 부추긴다고 지적받고 있다. 과거에도 수차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오랜 논란에 드디어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지난해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중국 미호요 ‘원신’. 확률형 아이템이 있지만 이용자 간 경쟁을 유발하며 과금을 유도하진 않는다는 점이 국내 시장 흥행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사진=미호요
지난해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중국 미호요 ‘원신’. 확률형 아이템이 있지만 이용자 간 경쟁을 유발하며 과금을 유도하진 않는다는 점이 국내 시장 흥행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사진=미호요

◆게임법 전면개정 추진… “확률 공개하라”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15년 만에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게임법) 전부개정이 추진되면서부터다. 2006년 제정된 게임법은 이름과 달리 게임산업 진흥보다는 게임물 심의나 게임 과몰입 예방 등 규제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초 대토론회를 통해 게임법 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듬어진 전면개정안이 이상헌 의원(더불어민주당·울산 북구) 대표 발의로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됐다. 이번 전면개정안에는 해외 게임사의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와 게임 등급분류 절차 간소화 등 많은 내용이 담겼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논란과 규제 움직임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네덜란드 게임 당국은 미국 EA(일렉트로닉아츠)의 피파(FIFA) 시리즈의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000만유로(약 132억원) 벌금을 부과했다. /사진=EA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논란과 규제 움직임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네덜란드 게임 당국은 미국 EA(일렉트로닉아츠)의 피파(FIFA) 시리즈의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000만유로(약 132억원) 벌금을 부과했다. /사진=EA

이 중 확률형 아이템 관련 조항(의안 제59조제1항)이 포함돼 화두로 떠올랐다. 유통·제공되는 게임에 대해 등급 등 기본정보와 함께 유상으로 구매하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개별 공급 확률도 표시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게임법 개정안 전반에 대한 의견서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의원실에 지난달 제출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고사양 아이템을 일정 비율 미만으로 제한하는 등의 밸런스는 게임의 재미를 위한 가장 본질적 부분 중 하나다.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연구하며 사업자가 관리해야 하는 대표적 영업비밀”이라며 전면적인 확률 공개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반면 한국게임학회는 “산업계에서 제시한 ‘확률형 아이템 정보는 영업비밀’이라는 논리는 그 자체로 모순”이라며 게임법 개정안에 포함된 대로 게임 아이템 확률 정보가 정확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이 성명서는 “최근 게임사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트럭 시위’ 등 이용자가 게임사를 강력히 비판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며 “이번 게임법 개정안 처리에서 문체부와 국회 문체위의 주도적 역할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콘텐츠(스토리)로 호평받은 일본 게임들인 ‘저지아이즈 사신의 유언’과 ‘13기병방위권’. 저지아이즈는 일본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을 맡았고 13기병방위권은 SF문학상 세이운상(星雲賞) 후보에도 올랐다. /사진=세가퍼블리싱코리아
콘텐츠(스토리)로 호평받은 일본 게임들인 ‘저지아이즈 사신의 유언’과 ‘13기병방위권’. 저지아이즈는 일본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을 맡았고 13기병방위권은 SF문학상 세이운상(星雲賞) 후보에도 올랐다. /사진=세가퍼블리싱코리아

◆자율규제 하고 있지만… 유명무실?

국내 게입업계는 2015년부터 유료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를 통해 확률을 공개하지 않은 게임물을 매달 발표한다. 올 1월 자율규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자율규제 준수율이 국내 게임사들은 99.1%, 해외 게임사들은 59.2%로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원사 기준으로는 100%다. 이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하지만 한국게임학회는 이런 자율규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자율규제에 참여하는 게임사가 실질적으로 엔씨·넥슨·넷마블 등 7개사에 머물러 있다. 법적 강제력이 없으므로 신고한 확률이 정확한지 알 수 없고 위반 시 불이익도 없다. 이용자 사이에서도 유명무실하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규제 대상이 ‘캡슐형 유료 아이템 제공 게임물’로 한정돼있는 점도 지적된다. 최근에 주로 문제가 불거지는 ‘컴플리트 가챠’는 대상에서 벗어나 있어 확률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컴플리트 가챠는 특정 아이템을 조합해 상위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말한다. 유료와 무료의 복수 아이템을 결합해 제3의 아이템을 생성하도록 하면 정작 이용자가 궁금해하는 해당 아이템의 확률은 알 수 없게 된다. 일본의 경우 사행성을 이유로 지난해 ‘컴플리트 가챠’를 소비자청 고시로 금지한 상태다.

국내에서도 확률형 아이템 관련 행정 처분 사례가 늘고 있다. 2019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확률형 아이템 지급 관련해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은 행위에 대해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선고한 바 있다. 이 사례에서는 확률을 ‘랜덤’이라고만 표시하고 일부 퍼즐 조각의 확률을 인위적으로 낮게 설정했음에도 알리지 않았다. 2018년 5월에도 한 게임사가 ‘획득 확률이 대폭 증가된다’고 광고한 것이 0.002% 상승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과장광고로 시정명령이 내려진 바 있다.

콘텐츠 관련 논란이 있었음에도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2020 올해의게임(GOTY·고티)을 휩쓴 미국 너티독 ‘라스트오브어스2’. 확률형 아이템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게임이지만 유저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점은 같다. /사진=SIEK
콘텐츠 관련 논란이 있었음에도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2020 올해의게임(GOTY·고티)을 휩쓴 미국 너티독 ‘라스트오브어스2’. 확률형 아이템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게임이지만 유저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점은 같다. /사진=SIEK


◆‘찰떡궁합’ 이룬 부분 유료화 모델과 확률형 아이템

최근 넥슨이 기존에 공개해온 캡슐형 아이템은 물론 유료 강화와 합성 유형의 아이템 확률 정보도 전면 공개하기로 하는 등 국내 게임사들도 이용자들의 요구에 점차 순응하는 분위기다. 게임사들이 그동안 확률 공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관련 논란이 수년간 이어졌음에도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한 이유는 결국 수익 때문이다.
과거 국내 게임산업 초창기에 게임사는 만연한 불법 복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PC방과 온라인 게임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정이 나아졌지만 정액제가 기본이어서 이용자와 수익 확보는 현재처럼 좋지 못했다.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부터다. 게임접속은 무료이되 게임 내에서 유료아이템을 판매하는 ‘부분 유료화’ 수익모델을 2001년 시도한 이후다. 이는 수년 후 등장한 확률형 아이템과 맞물려 대폭 시너지를 내게 된다. 모두 국내 게임사인 넥슨이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것들이다.

넥슨은 2004년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메이플스토리’ 일본판에 1장당 100엔짜리 ‘가챠폰티켓’이라는 아이템을 선보였다. 그 원형은 과거 동네 문방구 앞에서 볼 수 있었던 캡슐 뽑기(가챠)다. 티켓을 ‘가챠폰’(뽑기 자판기)에 넣으면 무작위로 아이템이 나오는 방식이다. 이런 랜덤박스 방식은 이듬해 국내에 서비스되는 메이플스토리에도 ‘부화기’라는 형태로 처음 적용됐다.

우연적 요소로 종류·효과·성능 등이 결정되는 확률형 아이템은 부분 유료화 수익모델과 함께 게임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넥슨의 급성장과 함께 국내 게임업계에 확산돼 업계 전체의 수익 상승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전하며 전세계 게임업계로 퍼져나갔다.

국내 시장 주류가 모바일게임으로 바뀐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무료로 게임을 이용 가능하므로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용자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필연적으로 과금이 요구돼 밸런스가 무너지는 단점도 그대로 이어졌다. 게임 타이틀을 구매하는 방식의 패키지 게임 위주인 콘솔 시장의 비중이 과거 게임업계가 겪었던 어려움과 플랫폼 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로 해외보다 작은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장르와 회사마다 편차가 크겠지만 대체로 모바일게임의 경우 전체 이용자의 5%가량을 차지하는 헤비유저로부터 게임 매출의 70% 이상이 나오는 구조”라며 “현재로서는 랜덤박스와 인챈트(아이템 강화)를 비롯한 확률 기반 수익모델이 국내 게임사 매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스토리)로 호평받은 일본 게임들인 ‘저지아이즈 사신의 유언’과 ‘13기병방위권’. 저지아이즈는 일본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을 맡았고 13기병방위권은 SF문학상 세이운상(星雲賞) 후보에도 올랐다. /사진=세가퍼블리싱코리아

◆이젠 과거에서 벗어나야 할 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피로감과 불신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커지는 상황이다. 그 사행성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점점 늘고 있다. 중국은 랜덤박스의 모든 확률을 공개하는 의무 조항을 2017년 발표하며 전세계 최초로 규제를 적용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2018년부터 도박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영국 의회에서도 규제 적용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몇몇 주에선 어린이는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박혁태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정책팀장은 “중국과 미국 등 해외 모바일게임이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확률형 아이템 요소가 거의 없는 콘솔형 게임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며 “확률 공개 의무화의 실익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환경 속에서 게임사와 이용자 간 불신이 지속된다면 결국 한국 게임 이용자가 한국 게임에 등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국내 게임업계는 전략적인 육성을 꾀한 중국 등과 달리 정책적인 진흥보다는 규제를 받아왔다. 이에 확률형 아이템 규제도 유명무실해진 셧다운제 등 기존의 제도들처럼 과잉규제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게임사들의 발목을 잡지 않는 정책이 요구된다.

이상헌의원실 측은 “과잉규제가 이뤄져선 안 된다는 데 공감한다. 사실 민간 자율규제가 잘 이뤄지면 가장 좋다. 그러나 그동안 수차례 자율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시간이 갈수록 이용자들의 불만과 피해는 오히려 커져만 갔다”며 “확률 공개는 이용자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알 권리다. 확률이 공개돼도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란 예측이 대다수다. 자율규제로 이미 확률이 공개되고 있기에 과잉규제가 될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문제는 현재 국내 게임사의 당면과제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게임 이용자는 국내 게임사가 게임 콘텐츠의 품질과 완성도로 승부하고 수익을 내길 기대한다. 콘텐츠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했던 시절은 지나갔고 기업의 덩치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졌다. 특정 수익모델에 얽매이지 않고 콘텐츠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음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늪에 빠진 것은 게임사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김영진 청강대 게임학과 교수는 “이제 국내 게임사도 그동안 특정 영역에서 안주해왔던 모습에서 벗어나 콘텐츠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급선무는 이용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국내 개발자와 학생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들의 역량이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 소모되지 않고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팽동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