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사기꾼 때문에 멀쩡한 임대인도 피해… 문 닫는 중개업소 '급증'

[머니S리포트-전세사기사건 그후] (1) '전세사기' 후폭풍… 화곡·미추홀 "전세시장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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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022년 10월 1100채 넘는 다세대주택(빌라)과 오피스텔 등을 임대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빌라사기꾼'(속칭 '빌라왕') 사태 이후에도 깡통전세가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전세 공포가 일파만파 확산되며 일부 선량한 임대인마저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이는 다시 기존 세입자의 전세금 미반환 사고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큰 상황. 전세사기 최대 피해지역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에선 공인중개사 폐·휴업이 현실화됐다. 전세사기 주범인 다세대주택·오피스텔의 인·허가와 착공 수는 수년째 줄어들고 있지만 수요 대비 여전한 공급과잉이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의 후속조치로 내놓은 '안심전세앱(App)'마저 시세보다 높은 가격 정보를 제공하면서 소비자들의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17일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지역. /사진=신유진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르포] 사기꾼 때문에 멀쩡한 임대인도 피해… 문 닫는 중개업소 '급증'
(2) 애물단지 '신축빌라'… 2022년 서울서만 2만채 지어져
(3) 정부 전세사기대책 '안심전세앱' 더 못믿어

지난해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빌라사기꾼'(속칭 '빌라왕') 사태. 조직적인 전세사기 사건으로 수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 금액만도 수천억원에 달했다.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피해자 지원 대책과 피해 방지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해가 넘어갔음에도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특히 전세사기 최대 피해 지역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사건 여파로 전세를 찾는 세입자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거래도 절반으로 줄었다.

지난 2월16일 찾은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저층 빌라 밀집지. 골목마다 낡고 허름한 집부터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까지 말 그대로 빌라촌이었다. '건축사기꾼'(속칭 '건축왕') 사건으로 미추홀구는 쑥대밭이 됐다. 앞서 인천과 경기 일대에 주택 2700채를 보유한 60대 건축업자는 10여 년 전부터 건물을 지은 뒤 분양가와 비슷한 액수의 전세 보증금을 받는 등 이른바 '깡통전세' 방식으로 자금을 회수했다. 이후 은행 대출을 더해 새 건물을 짓는 등 보유 주택 수를 늘려갔다.

이 건축업자와 함께 범죄를 공모한 바지사장, 공인중개사 등 공범들은 지난해 1~7월 사이 미추홀구 일대 소유 주택 중 163채가 경매에 넘어갈 것을 예상하고도 전세계약을 맺어 피해자들로부터 보증금 약 126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일 주범 60대 건축업자는 사기와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숭의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사기 사건 여파가 크긴 컸다. 전셋집 구하는 세입자 발길이 정말 뚝 끊겼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대표도 "집주인 때문에 전세를 내놓긴 하지만 문의가 없다"며 "사기꾼들 때문에 임대인들만 죽어나가는 꼴"이라고 말했다. 일부 공인중개업소는 유리 외벽에 전세 매물을 소개하는 광고물이 1건도 없었다. 해당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매물을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없어 아예 매물 광고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지난 2월16일 찾은 인천 미추홀구 빌라 밀집지역. /사진=신유진 기자



"전세시장 죽었다"… 자취 감춘 전세 거래


이튿날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시세가 저렴하고 신축 빌라가 많다. 가성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어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들에게 전세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세입자들의 외면으로 전세 거래는 자취를 감췄다.

세입자들의 화곡동 빌라 기피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전세 거래량은 전월(5032건) 대비 12.4% 줄어든 4408건으로 집계됐다. 월별 기준 지난 2018년(4358건) 이래 최저치다. 올 1월 거래량은 3619건이다. 화곡동의 경우 올 1월 빌라 전세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761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31건에 그쳤다.

화곡동의 경우 분위기는 더 침울하고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화곡동에서 20여 년 넘게 중개업소를 운영했다는 공인중개사는 "이 일대 전세시장은 죽었다고 보면 된다"며 "집주인들도 불만이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지켜볼 뿐"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2월17일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길바닥에 부동산 홍보 전단지가 떨어져있다. /사진=신유진 기자

길거리엔 '불안한 전세계약, 한 번에 완벽해결', '넓은 새 집 구해드리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전단지가 널려있었다. 공인중개업소들이 뿌린 홍보 전단지였다. 전세 만료를 앞둔 30대 초반 최모씨는 "화곡동에서 전세 계약하기 무서워 (계약이) 종료되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것"이라며 "풀옵션에 테라스까지 있고 신축인 빌라가 이사 조건이었지만 앞으론 안전한 집인지 여부가 1순위"라고 말했다.

'사람보다 빌라가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곡동엔 신축 빌라가 많다. 포화 상태임에도 옆에선 또 다른 빌라가 들어서고 있다. 길가엔 '분양 전세', '분양 사무실 오픈', '풀옵션', '건축주 직접분양' 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 등신대들이 서 있었고 전봇대에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여전히 신축 빌라 분양이 한창인 것이다.

전세 매물을 찾는 세입자가 없어 매매로 바꿨지만 역시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일부 전세사기꾼들로 인해 일반 임대업자까지도 피해를 본다는 게 지역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건축업자들의 경우 분양이 되지 않아 금융비용 손실이 상당하다"며 "다만 분양시장 악화 영향도 있고 고점에 토지를 매입해 분양하려던 건축주들도 있어 전세사기 사건의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나쁜 임대인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업을 하는 임대사업자들도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 닫는 중개업소… 개업 대비 폐업 60% 많아


지난 2월16일 찾은 인천 미추홀구. 공인중개업소 내부 불이 꺼져있고 오랜 시간 영업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진=신유진 기자

매매는 물론 전세 거래마저 끊기면서 화곡동과 미추홀구 일대엔 문을 닫는 중개업소도 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잇단 전세사기 사건에 가담한 중개업소도 포함돼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업장을 폐쇄한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중개업소 내부는 정리 안 된 물건들이 흩어져 있고 매물을 소개했던 안내문도 떨어져 있었다. 문 손잡이에는 마트 전단지가 꽂혀 있어 폐쇄한 지 일정 시간이 지난 것으로 짐작됐다. 대표 전화로 걸어보니 '없는 번호'라는 음성 메시지가 들렸다.

화곡동 소재 한 공인중개업소는 '연중 무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내부 불은 꺼져 있었다. '투자컨설팅'이란 문구가 외벽에 적혀있는 중개업소 역시 내부 등이 꺼져있고 외부 벽에 설치된 매물 정보 게시판도 비어있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공개한 '개업공인중개사 개·폐·휴업 현황' 자료를 보면 2022년 12월 기준 서울 남부권 개업 공인중개업소는 180개인데 비해 폐업한 곳은 284개로 60% 이상 많았다. 1년 전인 2021년 12월과 비교하면 개업 중개업소(235개)는 23.4% 줄어든데 비해 폐업 업소(205개)는 38.5% 늘었다.

다만 공인중개업소들이 문을 닫은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었다. 전세사기 가담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 침체기로 인한 경기 불황에 문을 닫은 곳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중개업소 폐쇄가 늘어난 이유는 무엇보다 부동산 거래량 급감이 원인으로 보인다"며 "일각에선 전세사기 사건 가담 때문이란 주장도 있지만 확인할 순 없다"고 말했다.


 

신유진
신유진 yujinS@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재테크부 신유진 기자입니다. 유익한 기사를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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