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올라도 걱정이고 떨어져도 걱정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입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고환율 상황에 대해 진단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센터장은 국내 대표적인 거시·자산시장 분석 전문가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굵직한 변곡점을 거치며 시장의 흐름을 분석해 온 베테랑 에널리스트다.
이례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까지 오르며 시장 전반에 부담이 커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김 센터장은 "고환율의 원인은 한국 경제 내부 문제만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이어 환율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하며 "우리 현대사회에서 경험했던 가장 큰 위기는 외환위기였고 달러가 없어서 발생한 위기였다"고 했다.
고환율, 한국만의 문제 아냐… 내년 완화 전망
김 센터장은 최근 고환율 현상이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최근 동아시아 환율이 대체로 약하다"며 엔화와 대만 달러도 모두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만 달러 약세 현상은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언급했다. 김 센터장은 "대만은 올해 성장률도 5%대 후반으로 굉장히 높고 경상수지 흑자도 크고 외환보유액도 한국보다 훨씬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대만 달러가 약한 것은 대만의 경제가 나빠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국의 고환율 상황에 대해서도 "일국적인 요인보다는 달러 강세와 국내 자금이 달러 자산으로 이동하는 영향이 크다"고 풀이했다. 다만 고환율의 기준은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코로나 이전에는 환율이 1200원 후반대 정도였는데 지금은 움직이는 레벨 자체가 높아졌다"며 "이건 한국이 미국보다 성장률이 높던 구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화 가치가 약해진다는 것은 그 나라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가 반영된 결과"라며 "한국은 코로나 이전까지는 늘 미국보다 성장률이 높았지만 2023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미국이 한국보다 성장률이 높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개발 이후 한국이 미국보다 3년 연속 성장률이 낮았던 적은 처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김 센터장은 "이렇게 되면 구조적으로 미국 돈의 가치, 즉 달러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장률이 높은 나라 통화가 강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최근 원·달러 환율의 기준 레벨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도 이런 성장률 격차가 반영된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추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김 센터장은 "1400원대 후반에서 여기서 더 올라갈 거냐고 하면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내년에는 성장률 격차도 줄어들고 금리 차도 확대보다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이번 주에도 금리를 낮췄고 내년에도 한두 번 정도 더 낮출 수 있지만 한국은행은 금리를 쉽게 못 낮춘다"며 "결국 금리 차는 벌어지기보다는 줄어드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우려는 인플레이션… 트럼프 태도와도 관련
고환율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 양가적인 면이 있지만 우려 점은 '인플레이션'이라고 짚었다. 김 센터장은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 기업은 좋지만 수입 물가를 높여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특히 "외화 부채를 많이 지고 있는 기업들은 달러로 갚아야 할 원화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나 반도체처럼 일부 수출 기업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고환율은 한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환율이 고물가로 이어질 경우 서민 경제는 물론 글로벌 정치 상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물가는 실업률과 함께 정치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변수"라며 "물가 상승은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위험"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정책에 대해 최근 태도를 조정하는 것도 물가와 관련이 있다고 짚었다. 김 센터장은 "미국에서 연임에 실패한 대통령들을 보면 공통점이 물가였다"며 "인플레이션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기회비용이 커질 때 정치가 한계를 드러내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 여전히 저평가… 기업 밸류에이션이 중요
내년 증시 전망에 대해서는 신중한 시각을 유지했다. 김 센터장은 "올해 코스피는 매우 예외적인 해"라며 "70% 가까이 오른 시장을 기준으로 내년을 그대로 기대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주식이 버블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며 "여전히 싸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라며 "미국 시장이 조정을 받을 때 한국만 디커플링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 센터장은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 자체가 가진 밸류에이션과 성장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주식은 어떤 업종이냐보다 그 기업이 어떤 회사인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며 "코스피냐 코스닥이냐를 가려서 사는 게 아니라, 결국 종목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별 주식을 사는 건 그 기업의 적정 가치가 무엇인지, 왜 저평가돼 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걸 모른 채 남들이 산다고 따라 사는 건 투자라기보다 투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주식은 가격 변동이 크기 때문에 잘 모르는 종목을 자주 사고파는 행위가 가장 위험하다"며 "개별 종목 투자를 하려면 그 기업을 충분히 알고 분산과 장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