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어·한자 가득한 법령…"내 손 거쳐 쉽게 바뀌었죠"

이경아 법제처 주무관…올바른 국어 보급 '한글 발전 유공자'
"85% 고쳤지만 기본법 정비 덜 돼…외래어 속도 빨라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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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아 법제처 주무관. (법제처 제공)
이경아 법제처 주무관. (법제처 제공)


(서울=뉴스1) 윤수희 기자 = '개호', '가료'

일상생활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뜻조차 유추할 수 없는 단어들. 이러한 단어들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곳이 있다. 바로 법전이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법을 어려워하고 다가가기 두려워하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알법)' 사업을 통해 어려운 법령 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 사업의 시작부터 함께하며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베테랑' 이경아(56) 주무관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평생 국어와 함께한 '베테랑'…수천 건 법령 고쳐

이 주무관의 삶은 한평생 국어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S 등에서 방송구성작가로 10년간 재직하다 한양대 국어교육과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법제처에서 알법 사업을 시작했던 2006년 법제처에 들어와 현재까지 국어전문가로 재직하고 있다.

"구성작가 일을 했던 90년대만 해도 방송은 전파를 타고 송출됨과 동시에 사라졌어요. 지금은 다시보기나 다시듣기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그때만 해도 제가 쓴 글은 다 일회용이 됐어요. 하지만 법은 한 번 공포되면 개정되거나 폐지되기 전까지 남아있는 거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더 매력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현재 알법팀은 총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주무관은 부처에서 입안한 법령이 법제국 심사를 거친 다음, 표현 단어나 문장이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정비 기준'에 맞는지 검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려운 용어, 어색하고 긴 문장은 이 주무관의 손을 거쳐 보다 쉽고 매끄럽게 재탄생한다.

이 주무관은 지난 17년간 2000여 건의 기존 법률 및 하위법령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일괄 개정했고, 해마다 새로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법령 1000여 건을 상시적으로 감수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한글발전유공자 대통령상 표창을 받았다.

◇"일본식 용어 꼭 고쳐야…가장 인상깊은 단어는 강사료"

알법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법은 무게가 있어야한다'는 보수적인 시각이 더 강했던 탓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법률 속 어려운 표현이 상당수 남아있는 이유다.

"지금은 꼭 고쳐야 할 단어를 선별한 용어 정비 목록이 있습니다. 전체 법령을 대상으로 해당 용어를 검색해 법을 골라낸 다음, 일괄 개정하는 식으로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주무관은 일본식 용어를 '꼭 고쳐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대표적인 예로 '간병하다'는 뜻의 '개호(介護)'가 있다. '타이루', '바란스' 등 일본식 외래어도 여전히 남아있었는데 2020년에야 비로소 일괄 정비됐다.

"우리가 낯선 단어라고 하더라도 그 단어를 들으면 의미가 연상되는 경우가 있는데, 개호는 연상이 잘 안 됩니다. 비슷한 단어로 '진료하다'라는 의미의 '가료(加療)'가 있습니다."

차별적이거나 권위적인 표현도 바꿔야 할 주요 대상이다.

부모와 대응되는 개념인 '자(子)', '학부형(學父兄)' 등은 성차별적인 표현으로 '자녀(子女)', '학부모(學父母)'로 정비됐다.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파출부'는 '가사도우미'로, 행정편의적인 용어인 '시달하다'는 '전달하다'로 개정됐다.

이러한 차별적인 용어들 중 이 주무관이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는 '강사료'였다고 한다.

"강사 단체에서 제안을 한 건데요.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에 돈을 붙이지 않잖아요. 교사에게 '교사료', 교수에게 '교수료'라고 하지 않는데 왜 강사한테만 강사료라고 하냐, 이건 차별성 있는 단어라 생각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은 강의료로 바꿨습니다."

이경아 법제처 주무관. (법제처 제공)
이경아 법제처 주무관. (법제처 제공)


◇"기본법 정비 안 돼 여전히 어려워…외래어 정착 전 대체어 찾아야"


이 주무관은 현재까지의 실질적인 정비 진행률을 "약 85% 정도"라 추산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민들이 법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주무관은 "민법, 상법, 형법, 형사소송법 등 기본법 정비가 여전히 안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형법은 2020년 말에 일부 조문들이 알법 표현으로 상당 부분 정비가 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용어나 표현이 많이 남아있어요. 예를 들어 '심신장애'의 경우 사람들이 심신(心身), 즉 '정신적·신체적 장애'로 오해할 수 있는데, 심신(心神)장애는 '정신장애'를 뜻합니다."

최근 이 주무관은 사회가 급변하며 생겨나는 수많은 외래어, 외국어 표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생소한 용어가 나올 때마다 당황스럽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통용되는 것을 받아들일지 국립국어원 등에서 권장하는 용어를 쓸지 갈등이 많아요. 법은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법에서 일단 쓰면 공식적인 용어가 되어서, 조심스럽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법이 발생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보니 '스토킹처벌법'처럼 사람들의 인식 속에 깊이 자리잡아 외래어가 법률 용어로 정착돼 버린 사례도 있다. 때문에 이 주무관은 외래어가 정착되기 전에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만의 단어를 빨리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코로나 시대에 '언택트'라는 말을 자주 썼어요. 근데 행정기관에서 언택트라는 말이 정착되기 전에 '비대면'이라는 용어를 퍼뜨리면서 '비대면'이 결국 이겼다고 생각해요. 공문서에 오르기 전에 대체어를 빨리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국어학자 등 전문가들이 만든 순화 용어가 법으로 반영돼 사회적으로 확산될 때 보람을 느낀다는 이 주무관.

"저를 뽑은 이유는 가장 대중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법은 대중과 동떨어진 세계이니 방송처럼 말로 쉽게 전달하려는 감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어렵게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의도가 잘 드러나도록 균형을 잘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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