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가 말하는 여자 이야기를 몇가지만 수정하면 강남 부동산투자자들의 성향과 거의 일치한다. 강남부자들을 상대로 상담해온 부동산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미리 커피 수요를 읽고 일찌감치 대형 커피전문점 하나씩을 꿰찼다. 더 큰 부자들은 모닝커피 문화가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서래마을 등 신흥상권에 건물을 사뒀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꿰뚫어본 셈이다.
이들은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지만 결코 팔랑귀는 아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의 고급정보라도 사실확인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확신이 들면 어떤 사람보다 정열적이다. 강남부자의 특징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과감한 결단력이다. 기회가 온다면 즉각 실행에 옮길 정도로 심장이 뜨겁다.
졸부가 아니라면 강남부자들은 좀처럼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 들지 않는다. 평범하거나 때로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한 경매전문가는 "낙찰받은 물건의 본래 주인이 갈 곳이 없자 거처를 구할 때까지 그 집에 살도록 배려해주거나 전세금을 빌려준 강남투자자도 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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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류승희 기자
◆'언제 얼마에 살까'보다 '잘 팔리는 게 뭘까'에 관심
각종 지표를 통해 드러나는 부동산 매수 실종에 혹시 강남부자들이 매매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들의 투자스타일은 매수 타이밍보다는 미래가치를 고민하는 쪽이다. 매매 타이밍도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시장상황이 어렵더라도 당장 생활에 위협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나의 편'이라는 심리에서 생기는 자신감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사업단 팀장은 "강남부자들은 살 때 가격을 고민하기보다 몇년 뒤 사는 사람 입장에서 고민한다. 예를 들어 3년 뒤 100억~150억원대의 건물 수요가 현재 10명에서 5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판단된다면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30억~50억원대 건물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특징을 꼬집었다.
강남투자자들의 투자 선호지역이 강남에 몰려있는 이유도 결국 환금성 때문이다. 안 팀장은 "임대수요가 많고 수익률도 높은 강북의 2000평대 빌딩을 마다하고 강남을 고집하는 강남부자가 많다"며 "이들이 강남을 고집하는 이유는 눈앞의 수익률보다 팔기 수월한 매물을 보유하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수익률보다 미래 자산가치를 고려하는 투자를 하는 것도 강남부자의 투자방식이다. 당장 수익이 생기지 않더라도 향후 양도차익이 크게 생기는 곳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는 것.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강남부자의 경우 상가나 오피스텔 등 세입자를 관리해야 하는 수익형부동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크다"며 "강남·서초·용산 등 적게는 30억~40억원에서 200억~300억원대 건물 수요가 강세"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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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뉴스1 박지혜 기자
◆오피스 버리고 소비 상권에 집중
경기불황과 무관하게 소비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신흥상권은 강남부자에게 좋은 투자처다. 최근 가로수길이나 도산공원 일대, 한남동 꼼데가르송길 등이 강남부자들이 2~3년 전부터 주목했던 지역이다.
반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기업의 위축을 예견한 강남부자들은 일찌감치 테헤란로 일대 등 오피스 밀집지역 이면도로 투자에서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불황을 이유로 사무실을 서울 외곽으로 옮기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테헤란로 일대의 3.3㎡당 임대료 단가는 3년 사이 7만~8만원에서 5만~6만원으로 낮아졌다.
반면 가로수길 등 폭 15m 이내의 자동차 통행이 어려운 소비성향이 강한 지역의 건물가격은 3년새 1.5배가 올랐다. 안 팀장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이 지역의 건물가격 상승세가 이어졌을 정도"라며 "강남부자들은 오피스 밀집지역이 불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소비중심 지역은 불황과 무관하게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미 실행에 옮겼다"고 전했다.
◆강남부자 관심사는 대선과 증여
지난 8월8일 정부가 발표한 '2012년 세법개정안'에 따라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중과세 부과가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강남의 땅부자들이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국회 통과를 남겨두고 있어 시장은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중과세로 인해 땅이 있는 강남부자들이 올해 안에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세법개정안 발표 이후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결정은 정권을 잡는 쪽에 유리하게 흐를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강남부자의 관심사는 올해 실시될 대통령 선거에 쏠려있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부동산 시장에서 최근 강남부자들의 행보는 정중동(靜中動)"이라면서 "대선 결과에 따라 바뀌는 부동산 정책이나 세제 영향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듯하다"고 전했다.
증여는 강남부자들의 영원한 관심사다. 부동산의 증여세 기준이 시세가 아닌 기준시가인 만큼 부동산이 금융상품에 비해 유리한 측면이 있다. 강남부자들이 증여 수단으로 부동산을 선호하는 이유다. 이 팀장은 "금융상품은 과세표준이 노출돼 있는 반면 부동산 과세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어서 건물이 강남부자들의 증여플랜의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처럼 부동산 자산가치가 정체돼 있을 때가 기회라는 분위기가 강남부자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모양새다. 증여는 시기와 가격 상승폭에 따라 세금부담이 달라지는 만큼 시기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다.
함 실장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완화가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자녀에게 부동산을 증여할 때 대출비중을 높여 증여가액을 줄이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