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형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롯데그룹 경영권을 두고 '난'을 일으켰다. 승기는 신 회장에게 기운 모양새다. 일본은 물론 한국 경영진과 노조까지 신 회장을 전폭 지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신동주 전 부회장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마치 폭풍전야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기회가 온다면 신 전 부회장이 언제든 반격에 나설 수 있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한·일 롯데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신격호 총괄회장을 포함해 가족들이 장남인 신 전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다. 과연 앞으로 롯데그룹을 이끌 오너는 누가 될까.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왕자의 난'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단이 4일 오전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홍보관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단이 4일 오전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홍보관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완승' vs '반격' 최종 승자는?
신동빈 회장의 완승일까,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일까. 신 전 부회장이 반격에 나선다면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인가.


표대결을 앞둔 신 전 부회장에게 절실한 것은 동생에게 기운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를 우호세력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지난 7일 일본행을 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신 전 부회장은 이날 오후 8시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하네다공항으로 떠났다. 신 회장이 일본 우호세력을 결집하면서 더이상 한국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입국한 그는 당초 지난 3일 일본으로 떠날 계획이었지만 비행기 예약을 취소하고 신 총괄회장을 곁에서 지켰다. 만약 신 총괄회장의 마음마저 신 회장에게 돌아선다면 신 전 부회장은 사실상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신 회장이 일본 L투자회사 12곳의 대표이사에 오르는 등 일본 우호세력을 강화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져 일본의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출국한 것으로 관측된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신동주·동빈 형제가 극적인 타결을 통해 계열분리에 나설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국은 신동빈 회장이, 일본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맡을 것이란 게 현재로선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


이는 소모적인 갈등을 줄이고 여론 악화, 정부와 정치권의 전방위적 공격으로 위기에 놓인 한·일 롯데를 살릴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기도 하다.

물론 이 경우 신 전 부회장은 동생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이 역시 우호지분을 확보하거나 신 총괄회장을 비롯해 어머니인 시게미쓰씨가 신 회장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와 금호 등 형제의 난을 겪은 대기업 선례를 감안하면 한국과 일본 혹은 사업별 계열 분리가 분쟁을 타개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신 총괄회장과 시게미쓰씨를 비롯한 주요 친족들이 신 회장의 마음을 달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계열분리 과정에서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가족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지분구조가 계열분리의 걸림돌"이라며 "두 형제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만큼 계열분리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권 장악한 신동빈, 왕좌 오르나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신 회장이 롯데의 '원톱 후계자' 자리를 굳힐 가능성도 점쳐진다. 신 회장은 한·일 롯데 경영진을 사실상 장악했다. 그는 지난 달 31일 일본에 소재한 12개 L투자회사 대표이사에 오른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L투자회사는 한국롯데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지분 72.65%를 보유한 곳이다. 그동안 12개 L투자회사 중 9곳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나머지 3곳은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롯데의 지배구조 몸통을 사실상 신 회장이 장악한 셈이다.

롯데 관계자는 "L투자회사 대표이사에 올랐다는 것은 사실상 롯데를 지배하게 된 것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실질적으로 L투자회사 대표이사에 올랐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일 롯데 경영진도 신 회장 라인에 섰다. 롯데그룹 37개 계열사 사장단과 롯데그룹 노조와 쓰쿠다 롯데홀딩스 사장까지 최근 신 회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처럼 한·일 롯데에서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신 회장. 그가 한·일 롯데를 손에 쥐기 위해선 왕자의 난을 서둘러 매듭지어야 한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록 롯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최근 롯데는 국적 논란에 휘말렸다. 한국에서 연매출 83조원을 기록하는데 비해 지배구조의 몸통과 헤드가 일본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일본 주주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 소상공인연합회와 금융소비자원 등 소비자단체는 롯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또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롯데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신 회장이 한·일 롯데의 오너로서 실권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신격호 총괄회장 경영 손 뗄까

신동빈 회장이 승리할 경우 신 총괄회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했다. 맨손으로 회사를 설립해 70년 동안 키운 롯데의 실존 창업주가 아들에 의해 왕좌에서 끌려내려오는 역모를 당한 것이다. 게다가 신 회장은 L투자회사 대표이사 자리를 꿰차면서 사실상 신 총괄회장을 또 한번 밀어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이 주주총회를 통해 한·일 롯데의 회장으로 신임을 받게 되면 신 총괄회장은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친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자 행보에 나선 것은 평소 신 총괄회장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따라서 그가 이번 왕자의 난에서 승기를 잡게 된다면 신 총괄회장은 더이상 경영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