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보다 더 가슴 떨리는 대기업 공개채용 시즌이 돌아왔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채용규모를 확정한 187개사의 채용규모는 2만9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1만9402명)보다 7.4% 증가한 수치다.

지원자들은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자격증 취득과 외국어학습 등 이른바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기업은 스펙보다 개인 역량을 더 요구한다. 이력서 항목에 스펙기재란을 축소하고 블라인드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 이력서와 성적이 합격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면접을 더 중시 여긴다. 면접자들은 지원자를 직접 만나 대화하면서 그들의 인성과 성향을 파악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달라진 인재 요구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순응형과 자기주도형을 원했다면 지금은 '실전형 인재'를 선호한다.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을 '필요한 인재'로 평가하는 셈이다. 이처럼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는 정치와 경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기업의 경영전략에 맞춰 요구하는 사람도 바뀐다는 의미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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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 '온순한'… 2000년대 '도전정신'
기업의 인재 선호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정치와 경제성장률이 크게 좌우한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1960~1970년대는 군사정권이 장악한 시대다. 저항적이고 진취적인 성향보다는 온순하고 모범적 스타일을 원했다. 또 명문대 출신과 학점 우수자는 성실한 사람으로 분류돼 기업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그런데 80년대 중반엔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고 인력이 넘쳐나면서 대기업들이 까다로운 선별 요건을 내걸었다. 명문대라는 간판 외에도 자격증과 아르바이트 등 사회경험 등을 자격요건으로 내세웠다. 구직자들이 자격증 공부에 몰두한 것은 이 때부터다.


80~90년대 중반엔 본격적인 사회적 계급이 형성됐다. 명문대생과 고학점을 비롯해 다양한 능력을 취업 필수덕목으로 삼았다.

고려대 경영정보대학원 이신철씨가 발표한 '한국 대기업 인재상의 변화'에 따르면 60년대 '순응형'에서 80~90년대 '자기 주도형'으로, 2000년대엔 전방위 역량을 발휘하는 전인적(全人的) 인재로 변했다. 이 자료는 이씨가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의 각종 통계치와 기업별 인사관리 서류 등의 자료를 분석해 기업이 요구한 인재의 특징을 시대별로 뽑아내 분석한 결과다.

이신철씨는 "지식기반 경제로 전환한 2000년대엔 글로벌 경쟁 아래 도덕성과 창의성이 요구됐다"며 "이에 기반한 역량과 도전정신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을 기업들이 가장 선호했다"고 말했다.


◆체계적 평가시스템으로 객관성 높여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정치권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과거보단 인재상을 보는 시각이 다소 체계적이다. 우선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을 인재로 평가한다. 또한 글로벌기업이 늘면서 전문성과 글로벌인재가 합격의 중요한 잣대로 요구된다.

객관적 평가를 위해 직무적합평가를 도입한 기업도 늘었다. 삼성과 포스코는 지원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나 인물 등을 포함한 성장과정을 기술하도록 하고 입사 후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기술하도록 하는 직무에세이시스템을 도입했다.

면접 방식도 다양해졌다. 한화그룹은 인·적성검사를 폐지하는 대신 면접을 3단계로 강화했다. 1차 면접은 직무 역량을, 2차는 인성을 평가하고, 3차 면접은 조직적합성 등 개인 역량에 대해 심층 검증을 한다.

기아자동차는 1박2일 합숙면접을 도입했다. 1박2일간 직무면접과 영어면접, 그룹 프로젝트 등을 통해 지원자가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열정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신세계 앤 파트너스 채용박람회. /사진제공=신세계백화점
신세계 앤 파트너스 채용박람회. /사진제공=신세계백화점
신세계는 '실전형 인재'를 뽑기 위해 응시자가 자신이 지원한 직무에 대해 다른 지원자와 차별화된 능력과 경험을 면접관들 앞에서 직접 소개하도록 하는 '드림 스테이지' 제도를 도입했다.
롯데그룹은 구조화역량면접, 프레젠테이션, 토론면접, 인성면접 등 4가지 면접을 차례로 진행하며 GS칼텍스는 1차 면접에서 프레젠테이션과 집단토론을 진행하고, 2차 면접에선 종합인성면접을 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성실성과 책임감, 협조성을 본다는 점이다. 이는 60년대부터 선호한 인재상이었는데 지금도 많은 기업이 요구한다. 또 각 기업의 인재상에는 고유한 기업문화와 경영주나 창업주의 정신이 담겨있다. 기업들은 시대가 변해도 이러한 고유 정신만큼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재계 관계자는 "20년 전 공채 시험을 볼 때 회사에서 요구한 내용이 성실과 근면, 책임감이었다"면서 "어떻게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기본적인 요구사항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기업들이 채용할 때 더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제시하면서 요구사항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올해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열정·전문성·책임감

올해 그룹별로 요구하는 인재는 누구일까. 삼성그룹은 몰입·창조·소통의 가치 창조인을 인재상 화두로 내걸었다. 열정과 몰입으로 미래에 도전하고 학습과 창조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이념이다. 또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협업이 가능한 사람을 요구한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인재를 최우선 조건으로 내세웠다. 타 문화 이해와 다양성의 존중을 바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문성을 개발하는 인재를 뜻한다. 인재상으론 도전과 창의, 열정, 협력을 꼽았다.

SK그룹과 포스코는 전문성에 초점을 뒀다. SK는 자기가 맡은 분야와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학습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인재를 원한다. 또 자신이 맡은 업무를 반드시 완수해내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책임감도 높은 점수를 준다. 포스코는 프로페셔널리스트를 지향하며 투철한 직업관을 중시한다. LG그룹은 신념과 실행력을 겸비한 인재를 찾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