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동의 AI 협력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전력기기 업체가 수혜 대상이 될 전망이다. 사진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순방 마지막 일정으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카스르 알 와탄에서 열린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하며 선물로 받은 석유 샘플을 살펴보던 모습.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에 세웠던 무역 장벽을 허물면서 국내 주요 전력기기 업체들의 반사이익 가능성도 커졌다. 미국의 빗장 해제로 데이터센터 등 주요 AI(인공지능) 인프라 구축에 속도가 나면 전력망 분야의 수주 기회도 함께 늘어나서다. 그동안 중동 시장에서 힘을 키워 온 국내 업체들의 현지 공략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현지시각)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UAE(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 5GW(기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목표로 현지 AI 기업 G42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는 미국 외 지역에서 조성되는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매년 50만개의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를 UAE에 수출하는 것에도 잠정 합의했는데 일부 물량이 해당 데이터센터 구축에 활용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최신 AI 칩을 1만8000개 이상 판매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은 최근 사우디아리비아 비야드에서 진행된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현지 기업인 휴메인에 GB300 블랙웰 칩을 1만8000개 공급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슈퍼칩인 GB300은 사우디 내 500MW급 데이터에 활용될 계획이다.

미국과 중동의 AI 교류에 속도가 난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는 시각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일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AI 확산 프레임워크'를 폐기했다. AI 반도체 수출국을 세 등급(동맹국·제한국·적대국)으로 분류해 고성능 AI칩의 무허가 수출을 제한하는 정책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산시켰다. 그동안 중동 국가는 중국과 함께 적대국으로 분류돼 미국의 AI칩 수입이 불가했다.


규제 해제로 관계 물꼬를 틔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부터 나선 중동 순방길에서도 걸프 지역 3개국인 사우디, 카타르, UAE를 차례로 찾아 수천억 달러에 해당하는 투자 유치를 이끌었다.

양측의 두터워진 관계는 국내 전력업계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사우디·UAE 등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경우 초고압 변압기, 배전반 등을 추가 발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경우 기존 에너지 중심의 산업 구조를 첨단산업으로 다각화하는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라 앞으로 시장 기회는 더 늘어날 것리란 관측이다.

중동에서의 존재감을 꾸준히 키워온 국내 주요 전력기기 3사(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는 현지 시장 내 입지가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 1분기(1~3월) 신규 수주 약 1조9000억원을 기록하면서 수주잔액을 약 8조7400억원까지 확대했다. 중동 수주가 전분기 대비 151% 증가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사우디 시장에서 승인된 제조사가 제한돼 있어 높은 수익률로의 수주가 가능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도 관련 인프라 공사가 3~4개 더 있을 것으로 본다.

같은 기간 효성중공업은 매출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10%(1076억원)나 된다. 사우디와 UAE, 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에 여러 지사를 두고 영향력을 키워왔다. 지난 2023년에도 사우디 네옴시티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현지 전력기기 제조사와 차단기 생산법인 설립에 대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바 있다.

LS일렉트릭도 그동안 NESMA, Alfanar, Rolaco 등 현지 협력사와 함께 사우디 전력망에 필요한 송변전 및 배전 전력기기를 공급했다. 일부 제품의 경우는 현지조립생산(SKD) 체계를 구축하는 등 현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UAE에도 지사를 두고 중동 시장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