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저 계급론'이 유행이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들의 계급이 결정되는 현 세태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본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재력이 성공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게 객관적 수치로 증명된다는 점이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 교수의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3' 보고서를 보면 상속이나 증여가 자산 형성에 끼친 비율은 1980년대 27%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에는 42%로 두배 가까이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 ‘금수저’ 물려면… 부동산 잘 굴려라?


애석하게도 이런 추세는 고령화와 저성장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가파를 전망이다. 현재 20~30대의 부모세대인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보유자산 중 부동산 비율은 무려 81.9%(서울대학교, '제3차 한국 베이비붐 세대 패널 연구 보고서')에 달한다.

이를 고려할 때 계층 상향 이동과 부동산은 사실상 불가분의 조건인 셈이다. 실제로 뉴스타파에 따르면 강남 가로수길 중심 상권의 건물을 조사한 결과 63개의 건물 소유주 중 절반 이상(32개)이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소유권을 이전한 경우였다.

가로수길 일대 건물주 중 이른바 '금수저'가 많다는 의미다. 이는 1970~1980년대 경제적 고도성장기에 팽배했던 부동산 시장의 투기풍토가 베이비붐 세대의 몸에 여전히 배어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로수길. /사진=머니투데이DB
가로수길. /사진=머니투데이DB

특히 이들은 '강남불패 신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를 직접 체험한 터라 이런 성향이 훨씬 강하다. 또한 지난 몇 년간 상권의 급성장으로 시세차익이 워낙 크다보니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속사정도 있다.
예를 들어 A씨가 지난 2005년 50억원에 상가건물을 샀다가 올해 150억원에 타인에게 매각하면 양도차익은 100억원이다. 장기보유 특별공제 30%를 제외한 70억원에서 양도소득세(38%)와 지방소득세(10%) 등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29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건물을 매각하고 A씨가 손에 쥔 121억원을 다시 자녀에게 증여한다면 5000만원을 공제한 120억5000만원의 50%인 60억2500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A씨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총 90억원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권이 발전하면서 건물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음에도 가로수길 인근에선 거래되는 물량을 찾아보기 힘들다. 젠스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가로수길 상권에서 3305.7㎡ 이상 규모의 건물이 거래된 사례가 단 2건에 불과했다.

건물주가 시세차익에 따른 높은 양도세 부과를 회피하기 위해 상속이나 증여를 선택한 영향이라는 게 젠스타의 설명이다. 상속이나 증여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하는 매매와 달리 감정평가액이나 기준시가를 적용 받아 통상 세금을 30~50% 수준으로 절감할 수 있다.

◆'금수저'로 탈바꿈하려는 서촌 건물주

강남에 가로수길이 있다면 강북에서는 서촌을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가로수길의 건물주가 대부분 타고난 '금수저'였다면 서촌의 건물주는 상권의 발전에 힘입어 '은수저'에서 '금수저'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대부분 수십년 전 서촌에 터를 잡은 원주민들이 건물주다 보니 고령인 이들을 대신해 자녀가 전면에 나서 실직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상권이 뜨자 연락이 끊겼던 자식에게서도 연락이 오는 등 효자가 갑자기 늘었다는 가시돋힌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

서촌 ‘한옥 골목길’. /사진=머니투데이DB
서촌 ‘한옥 골목길’. /사진=머니투데이DB

한 부동산중개소장은 "과거에는 건물주들이 인정에 끌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상인들의 사정을 살펴 임대료를 과도하게 올려달라거나 가게를 비워 달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야 장사가 잘돼 그저 다들 좋아했지만 점차 공동체문화는 빛이 바래 갔다"면서 "최근 부쩍 상업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고즈넉한 겉모습과 달리 속내는 팍팍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4년 사이 서촌 일대 건물의 3.3㎡ 매맷값이 평균 2배 정도 뛰었다. 자연히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그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메웠으니 고유의 온기는 예전만 못하다.

보다 못한 서울시가 지난달 23일 임대료 상승에 제동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시는 건물주와 상인, 주민, 전문가, 공무원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는 협약을 맺기로 했다.

시는 가로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한편 건물을 매입하거나 임차해 지역을 대표하는 핵심시설을 만들고 이곳에 저렴한 임대료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병행한다. 또한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정부에 젠트리피케이션 특별법 제정을 건의할 방침이다.

상인들은 시의 대책 발표를 반기면서도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혀를 찼다. 서촌에서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이미 서촌 일대 매맷값이 정점을 찍고 임대료도 정체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며 "시에서 조금 더 빨리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게 아쉽다"고 털어놨다.

송기욱 젠스타 선임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상권이 급격히 성장한 가로수길, 서촌, 경리단길 등 거리상권의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일부가 모든 과실을 탐하려는 현재의 구조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함께 상생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