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이 금융상품에 가입하시려면 태블릿PC 화면에 사인하세요. 상담 받으신 자료는 고객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 알림톡으로 보내겠습니다.”
시중은행 창구에서 종이서류가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창구를 늘려 불필요한 종이 낭비를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늘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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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전자문서시스템/사진=기업은행 |
은행 직원은 상담관리 포털에 탑재된 1000여개의 금융상품을 고객의 태블릿PC에 띄워 고객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상담을 진행한다. 태블릿PC의 상담 자료는 고객에게 문자로 전송한다. 고객은 태블릿 모니터로 대다수 서류를 작성해 빠르게 업무를 보고 직원은 거래에 필요한 서식을 찾거나 검색해 출력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울러 각종 서식을 만들거나 고객 장표를 보관하는 등의 관리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전국 영업점에서 매일 본점으로 보내는 종이서류와 운송, 스캔, 창고보관의 절감효과는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연내 디지털창구 전면 개편
올해 KB국민은행(KB금융)·신한은행(신한지주)·KEB하나은행(하나금융지주)·우리은행·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은 전 영업점의 창구를 디지털창구로 전환할 계획이다. 지방은행도 속속 페이퍼리스에 동참하고 있어 전국 은행에 디지털창구가 확대될 전망이다.
신한은행은 이달부터 쏠깃(SOL kit) 서비스를 시작해 전국의 모든 창구에서 태블릿PC를 활용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전국에 ‘하나 스마트 창구’를, KB국민·우리·NH농협은행도 디지털창구를 확대할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전 영업점 창구에 종이 신청서 대신 태블릿PC에서 전자신청서를 작성하는 'IBK전자문서시스템'을 도입했다. 2015년 은행 영업점 창구에 전자문서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수신거래의 70%를 전자문서로 처리할 정도로 창구업무의 디지털화를 이뤘다.
은행 관계자는 “디지털창구 도입으로 고객들이 금융서비스를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고객과 직원 모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디지털창구는 전 세계적 금융의 흐름이다. 미국 은행은 1990년대, 영국은 2000년대 들어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 은행도 2010년부터 고객이 요청할 때만 종이통장을 발행한다. 통장발급에 따른 비용을 줄이고 불법거래된 종이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선 정부가 '종이 없는 사회'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각종 문서나 서류를 전자문서로 작성,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자문서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당국은 2020년 9월까지 금융거래 관행 혁신방안으로 창구문서는 물론 종이통장을 없앨 계획이다.
은행 관계자는 "디지털창구는 지난해 9월 시행된 종이통장 선택제 이후에도 비용절감 효과를 나타내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며 "통장 한개를 줄이면 개당 5000~1만8000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연간 45억원가량 비용절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접점, 차별화 필요
전문가들은 국내 디지털창구가 미래형 점포로 안착하려면 기존 점포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지털창구는 전통적인 점포가 아니라 온·오프라인뱅킹을 이용하는 고객과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은 미래형점포로 스마트 브랜치, 무인점포, 복합점포 등 다양한 점포를 선보였지만 고객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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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브랜치는 2010년 스마트폰과 함께 등장해 고객이 직접 IT기기를 활용,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비대면 실명 확인 및 인증서비스가 불가능해 완전히 대면채널을 대체하기 어려웠고 고객들은 점차 스마트 브랜치를 외면했다. 스마트 브랜치는 최근 신한은행이 제주특별자치도 복합 리조트인 ‘제주신화월드’에 ‘제주신화월드 스마트 브랜치’를 개점한 것을 제외하면 신규 출점 움직임이 거의 없다.
무인점포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2곳을 운영하는 반면 다른 은행들은 설치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무인점포에서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고객이 적어서다. 무인점포는 말 그대로 은행원이 상주하지 않고 디지털 키오스크(로봇)가 통장 개설부터 주요 상담업무를 제공한다. 주로 IT기기 사용에 자유로운 젊은층들이 무인점포의 주거래 고객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디지털창구가 안착하려면 창구직원이 먼저 디지털 영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원이 태릿PC를 들고 나가 고객을 만나는 태블릿브랜치는 디지털창구를 대중화할 수 있는 대안이다. 특히 모바일뱅킹 사용이 어려운 50대 이상 고객들은 직원이 태블릿PC로 어려운 금융거래를 설명해줘 디지털 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 은행 영업시간(오전 9시~오후4시) 외에도 이용할 수 있는 탄력점포에도 디지털창구 도입이 필요하다. 시간 제약이 있는 고객이 디지털창구를 이용해 금융거래를 빨리 소화하면 만족도가 더 올라가서다.
보안은 디지털창구에서도 필수적이다. 무인점포의 디지털 키오스크는 바이오정보를 미리 등록해 놓으면 카드나 통장이 없더라도 금융거래가 가능하다. 다만 바이오정보는 한번 유출되면 복원이 어려운 만큼 분산관리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디지털창구가 고객들에게 친근한 미래형 점포로 자리매김하려면 태블릿브랜치로 고객 접점을 늘려 디지털금융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며 “보안문제와 이질적인 영업환경에 따른 고객 불만을 해결하면 새로운 점포를 금융시장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