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에는 기업의 철학과 문화가 녹아있다. 최근 기업들이 조직문화 혁신에 나서면서 사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옥 로비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사무실은 직원들의 편의를 고려한 공간으로 진화했다. 사옥의 이유있는 변신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사옥 내부 모습. /사진=김경은 기자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사옥 내부 모습. /사진=김경은 기자

“인스타그램 속 ‘#용리단길’이 바로 여기예요.”
지난 26일 낮 12시, 서울시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지하 1층은 사람들로 붐볐다. 갓난아기부터 군인까지, 사옥 치고는 상이한 유형의 사람들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순하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사옥이 만남의 장소가 된 것이다.


사옥의 문이 활짝 열렸다. 과거 사옥은 해당 회사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폐쇄적인 공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은 사옥 문을 열고 외부인을 반기고 있다. 사옥 내부에는 각종 상업시설과 문화공간이 들어섰다. 이 같은 개방형 사옥은 소비자에게는 체험의 기회를, 기업에게는 홍보 효과를 제공한다.

◆사옥에 외부인이 모이는 이유

아모레퍼시픽 사옥 지하 1층에 위치한 식당가. /사진=김경은 기자
아모레퍼시픽 사옥 지하 1층에 위치한 식당가. /사진=김경은 기자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지난해 11월 완공된 이후 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아모레퍼시픽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의 공간을 개방하고 각 층을 식당과 카페, 미술관 등으로 꾸몄다. 특히 지하 1층은 인스타그램 성지로 꼽히는 맛집과 카페가 몰려 있어 점심시간이면 줄을 길게 늘어선다.
26일 점심시간에 이곳을 찾은 대학생 김정현(21)·조선주(21)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됐다. 사옥 일대를 ‘용리단길’이라고 하더라”라며 “맛집, 카페, 전시를 한번에 누릴 수 있어 여름철 데이트코스로 제격”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내에 입점한 커피전문점 '테라로사'. /사진=테라로사 페이스북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내에 입점한 커피전문점 '테라로사'. /사진=테라로사 페이스북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포스코센터도 개방형 사옥으로 유명하다. 포스코는 지난 4월 사옥 지하 1층부터 2층까지를 재단장하면서 유명 맛집들을 입점시켰다. 특히 1~2층에 위치한 커피전문점 ‘테라로사’는 이 건물의 명소다. 철강 자재와 안전모 등으로 내부를 꾸며 철강기업의 이미지를 살린 점이 특징이다.
고등학교 교사 박혜준씨(26)는 일주일에 세번 이상 이곳에 방문한다. 박씨는 “사옥 내에 있어서인지 업무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라며 “수업 준비를 하러 자주 오는데 노트북으로 개인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 동질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최근 완공된 사옥은 이처럼 사옥 저층부를 상업시설로 채우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신영증권도 지난 5월 사옥 리모델링을 통해 지하 1층~지상 2층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특히 남성의류 매장, 자전거 매장 등 금융권 직장인들의 라이프사이클에 맞는 상업시설을 입점시켜 특색 있는 빌딩으로 거듭났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신영증권. /사진=김경은 기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신영증권. /사진=김경은 기자

◆사옥을 홍보수단으로

기업이 사옥을 개방하는 이유는 단지 임대료 수입 때문만이 아니다. 사옥은 기업의 정체성이 담긴 공간이다. 사옥에 들어오는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기업과 브랜드의 정체성과 마주하게 된다. 사옥이 기업의 홍보수단이 되는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사옥 2층에 자사의 역사를 소개한 박물관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와 자사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특화 매장 ‘아모레스토어’를 뒀다. 사옥을 방문하는 고객들이 아모레퍼시픽을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 담당자는 “하루에 90~130명이 이곳을 방문한다”며 “옛날 화장품을 구경하는 재미와 더불어 디자인 엽서를 챙겨갈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아포레퍼시픽 사옥 2층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 이곳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아포레퍼시픽 사옥 2층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 이곳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포스코도 사옥 1층과 2층에 ‘스틸 갤러리’라는 제품종합전시관을 열었다. 이곳은 체험형 전시관으로 철강의 용도, 철강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소개한다. 이 공간을 통해 무거운 철강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시민들에게 친숙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는 게 포스코 측의 설명이다.
이 같은 사옥 개방은 ‘공간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이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친밀감, 충성도 등을 제고하고자 함이다. 최근 기업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나 체험관을 여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소비자·지역 모두 만족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 네이버는 사옥 1~2층에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제공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 네이버는 사옥 1~2층에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제공

지역 주민들도 사옥 개방을 환영한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인근 상권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해 11월 사옥이 들어선 뒤부터 이 지역에는 식당과 카페들이 연달아 생기기 시작했다. 상권 수요가 늘면서 기존 업무·주거용 건물을 식당·카페 등으로 용도 변경하는 경우도 급증했다. 이로 인해 사옥이 위치한 서울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서 삼각지역 사이에는 ‘용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 ‘그린팩토리’도 인근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네이버는 2010년 이곳에 입주하면서 건물 1~2층을 도서관으로 꾸며 민간에 개방했다. 디자인, IT 분야 위주의 서적 2만5000여권을 보유한 덕분에 월평균 5만여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특히 네이버는 이곳을 통해 사회공헌활동도 펼친다. 도서관 내에 위치한 카페는 발달장애인 고용기업 ‘베어베터’와 함게 운영된다. 지적장애나 자폐를 가진 청년들이 바리스타로 일하며 이곳에서 발생한 수익금은 모두 발달 장애인들을 위해 기부된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이 사옥을 개방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문화 체험의 기회와 편의를 제공한다”며 “이는 소비자경험을 확대하려는 마케팅인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으로 볼 수 있다. 기업 이미지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