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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라젠 사무실./사진=뉴스1 여주연 기자 |
‘상장폐지’ 기로에선 신라젠의 운명이 11월 중으로 결정된다.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의 두 번째 상장적격성 실질 심사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거래소 기심위는 5시간에 걸친 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재심의하기로 했다. 첫 심의에서 결정을 하지 못한 만큼 이번 심사에서는 주주들에게 최상의 시나리오인 ‘거래재개’ 혹은 최악의 시나리오인 ‘상장폐지’라는 결론에 도달할 전망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신라젠은 2차 경영개선계획서를 10월30일자로 제출했다. 거래소는 11월 중으로 기심위를 열고 신라젠 심의를 속개한다. 규정상 영업일 20일 이내에 기심위가 열려야 하는 만큼 11월 말 이전에는 개최될 예정이다. 기심위는 법률·회계·학계·증권시장 등 분야별 외부 전문가로 구성돼 경영투명성·영업지속성·재무 건전성 등을 종합해 ▲거래재개 ▲개선기간 부여 ▲상장폐지 등을 결정한다.
거래소 관계자는 “신라젠으로부터 경영개선계획서를 받았다”며 “종전 1차 계획서와 달리 경영자 교체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진이 변경됨에 따라 전체적으로 수정 보완됐다”며 “기심위는 아마 11월 중순에 열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고 덧붙였다.
신라젠 경영개선계획서, 어떤 내용?
상장폐지 명운 속 신라젠은 수정된 ‘경영개선계획서’에서도 경영투명성과 신약의 가치를 강조한 것으로 업계는 관측했다. 경영개선계획서는 회사의 영업비밀 등이 기재돼 있어 비공개다. 그럼에도 기심위가 경영개선계획서를 토대로 상장폐지 여부를 판단하는 만큼 중요한 문서다. 신라젠이 1차 경영개선계획서에 이어 보완된 2차 경영개선계획서를 제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라젠 관계자는 “지난 8월 기심위 당시 문은상 전 대표 사임 뒤 지배인 체제에서 경영개선계획서를 제출했다”며 “이후 주상은 경영지배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했고 사외이사진을 새롭게 개편하는 등 보완된 경영개선계획서를 냈다”고 밝혔다.
신라젠은 2차 경영개선계획서를 통해 문 전 대표와의 연결고리가 끊겼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업계는 해석했다. 거래소는 기존 경영진에서 독립한 새로운 체제로 신라젠의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길 권고해 왔다.
신라젠은 지난 9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대대적인 체제 변경에 나섰다. 신라젠은 주 경영지배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했으며 홍승기·정영진·남태균 등 세 사람으로 사외이사진을 새롭게 꾸렸다. ‘아킬레스건’으로 꼽힌 문 전 대표와의 관계와 이사진을 바꾸며 새 출발을 알린 것이다.
신라젠의 유일한 파이프라인인 항암제 ‘펙사벡’의 가치를 부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젠은 단하나의 파이프라인만을 보유한 기업인 만큼 기업의 지속성을 인정받으려면 펙사벡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선 간암환자대상 임상3상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최근 고형암과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진입했고 미국에서는 흑색종 대상 희귀질환치료제 지정 등 관련 성과가 나오고 있다.
다만 경영 유지를 위한 회사 재무 구조는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신라젠은 사실상 연구개발 기업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올 2분기 기준 마이너스 100%를 넘는다. 자기자본 410억원 중 법인세비용차감전사업손실액은 285억원으로 50%를 초과한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심위에서는 기업의 가치와 사업의 계속성 등을 전반적으로 다룬다”며 “다만 신라젠의 경우 기술특례 제도로 상장된 기업인 만큼 다른 기업과 다른 잣대를 적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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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바이오기업 신라젠의 소액주주들이 집회를 열고 신라젠의 거래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신응수 기자 |
거래정지 6개월, 속타는 주주들
이제 남은 건 거래소의 결정이다. 신라젠의 거래정지 기간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거래재개인지 상장폐지인지 결정하지 못한 채 사실상 경영개선기간을 6개월이나 부여한 셈이다.
신라젠은 2016년 기술특례 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2017년 하반기부터 간암치료제로 개발한 ‘펙사벡’의 임상 관련 호재로 주가가 치솟았다. 신라젠 주가는 한때 15만원을 넘으며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당시 개인주주 사이에서는 ‘바이오 신화’로 불렸다.
하지만 2019년 8월 미국에서 간암 대상 임상3상이 중단되면서 신라젠의 기업 가치는 고꾸라졌다. 신라젠 전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하자 거래소는 지난 5월4일부터 신라젠의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거래소는 6월19일 신라젠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그동안 신라젠의 소액주주의 시계는 멈춰있었다.
지난해 말 기준 신라젠의 소액주주 수는 약 17만명, 보유 주식 비율은 87.7%다. 신라젠은 개인주주 비율이 국내 코스닥 상장 업체 중 높은 편이다. 신라젠 소액주주 모임인 ‘신라젠행동주의주주모임’은 거래재개가 성사될 때까지 집회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11월12일과 19일에 거래재개를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이성호 신라젠행동주의주주모임 대표는 “거래소가 2016년 신라젠 상장을 검토하고 승인했다”며 “문제는 거래정지 사유에 대한 발생행위가 이미 상장 전 일이고 확정된 사실도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