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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세대교체가 빨라지고 있다.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1980년대생 오너경영인들이 전면에 배치되며 3~4세 시대로의 진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젊은 감각을 앞세운 오너경영인들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한편 차기 후계구도를 다지려는 복안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단행된 주요기업들의 연말인사에서 80년대생 오너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삼양그룹은 지난 1일 인사를 통해 김윤 회장의 장남 김건호 경영총괄사무를 지주사인 삼양홀딩스의 사장으로 신규선임했다.
김건호 사장의 직책은 전략총괄이며 앞으로 그룹의 성장전략과 재무를 책임지게 된다. 김 사장은 1983년생으로 2014년 삼양사 입사 후 해외팀장, 글로벌성장팀장, 삼양홀딩스 글로벌성장PU장, 경영총괄사무 및 휴비스 미래전략주관(사장)을 거쳤다.
김 사장은 이번 인사에 따라 휴비스 사장직에서 물러나 삼양그룹 경영에 전념할 계획이다.특히 김 사장이 지주사의 경영을 총괄함에 따라 그를 중심으로한 4세 경영 시대가 본격화됐다는 평가다.
코오롱그룹 역시 지난달 28일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사장을 지주회사 ㈜코오롱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 내정하며 4세 경영을 한층 공고히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 부회장은 1984년생으로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에 차장으로 입사해 코오롱글로벌(건설) 부장,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코오롱 전략기획 담당 상무 등 그룹 내 주요 사업 현장을 두루 거쳤다.
2019년부터는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지속 성장의 기반을 다졌고 2021년부터는 지주사 최고전략책임자(CSO)를 겸직하며 수소사업 밸류체인 구축을 이끌었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코오롱그룹 자동차유통 부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올해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독립법인으로 성공적으로 출범시키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HD현대 역시 지난달 단행된 인사를 통해 오너 3세인 정기선 HD현대(옛 현대중공업그룹)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2021년 10월 사장에 오른 지 2년 만이다.
1982년생인 정 부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 이사장의 장남으로 2009년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2013년 재입사해 현장에서 경력을 쌓으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과 지주사 HD현대 대표이사에 올라 미래 성장 기반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부회장의 승진을 계기로 HD현대는 오너경영 체제로의 전환을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LS그룹 총수 일가 3세인 구동휘 LS일렉트릭 비전경영총괄 대표 부사장도 최근 인사를 통해 LS MnM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자리를 옮기며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2차전지 소재 사업을 담당하게 됐다. 1982년생인 구 사장은 LS MnM COO로서 소재 사업 추진을 가속하고 파이낸셜 스토리 구축을 통한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를 실현할 계획이다.
이미 1980년대생 오너경영인을 중심으로 후계구도를 공고히 정립한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한화그룹이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지난해 8월 부회장에 오르며 3세 경영체제를 공식화했다.
1983년생인 김 부회장은 한화그룹의 방산·화학·신재생에너지 부문 사업을 이끌며 한화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화오션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키며 육·해·공을 모두 아우르는 방산 경쟁력을 구축했다.
이 외에 SK그룹 오너 3세인 최성환(81년생)도 부친 최신원 회장 대신 SK네트웍스 총괄사장 맡아 그룹의 경영을 진두지휘하며 그룹내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 3~4세 오너경영인들이 완전안 세대교체를 이루기 위해선 해결해야할 과제도 있다. 먼저 경영능력을 검증해야 한다. 승진 과정에서 일부 경영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받긴 했지만 앞으로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차기 후계자로서 흔들림 없는 리더십을 대내외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한 지분승계가 필요하다. 현재 1980년대생 오너경영인들의 지분은 대부분 한자릿수에 그친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 지주사인 한화의 지분 4.44%를 보유하고 있으며 정기선 부회장은 HD현대 지분 5.26%를 보유하고 있다. 최성환 사장은 SK네트웍스 지분율이 3.15% 수준이며 김건호 사장은 삼양홀딩스 보유 지분률이 2.54%에 그친다.
재계 관계자는 "후계구도 안정을 위해선 순차적으로 지분 상속이 이뤄져야 하는데 국내 최대 상속세율이 60%인 점을 고려하면 승계 과정에서 수백억~수천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며 "향후 각 기업들이 계열사 상장, 합병·분할 등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재원 마련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후계자의 지분이 없는 곳도 있다.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이다. 부친인 이웅열 명예회장이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주식을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어 이번 부회장 승진이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에 대한 지분 승계는 상대적으로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