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 은행장이 '고객몰입의 끈을 고쳐 매고 고객의 실리를 높이자'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신한은행
정상혁 은행장이 '고객몰입의 끈을 고쳐 매고 고객의 실리를 높이자'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신한은행

최근 은행권에서 대규모 횡령·배임사건이 발생하면서 내부통제 중요성이 커졌다. 은행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부정 행위를 예방하고 적발하려면 인간이 만든 시스템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지난 2020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홍콩·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금융 당국으로부터 총 62억5000만달러(약 8조1000억원) 벌금을 부과받았다. 2009년부터 수년간 말레이시아 국부펀드 1MDB 자금을 세탁하고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뿌린 혐의다.


도덕적 해이로 큰 손실을 본 골드만삭스는 골드만삭스는 이듬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자금세탁방지(AML) 기술을 만드는 영국 기업 컴플라이어드밴티지에 2000만달러(약 260억원)를 투자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내부자 불법 행위를 잡아내기 역부족이라고 판단해 첨단 기술의 힘을 이용한 것이다.

효율적 규제 준수 '컴프테크'… 레그테크의 꽃 'AI'

빅데이터와 클라우드(원격 컴퓨팅), AI, 블록체인 등 각종 첨단 기술을 활용해 규제를 관리하는 이른바 '레그테크(Regtech·Regulation technology)'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은행이 활용하는 레그테크는 은행이나 기업이 규제를 효율적으로 준수(compliance)하게 도와주는 '컴프테크(Comptech)'다.

스페인 대표 상업은행 BBVA와 일본 미즈호(Mizuho), 중국 최대 상업은행 중 하나인 중국은행(BOC)은 AI를 활용해 전 세계 50여 국의 규제 개정 사항을 자동 모니터링하는 컴프테크 소프트웨어 원섬엑스(OneSumX)를 이용하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참석자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권 AI 협의회 발족식에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참석자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권 AI 협의회 발족식에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레그테크 기술 발전의 원동력은 AI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8년 국내 레그테크 산업 활성화를 위해 아시아 최초로 MRR 시범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MRR는 기계로 금융 관련 법규를 읽고 규제준수 업무를 수행해 사람이 하던 준법감시 업무를 대체한다.

금감원은 전자금융거래법과 시행령, 전자금융감독규정 등 내용을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사업에는 AI, 블록체인 등 신기술이 적용됐다. 보고 의무 사항을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연어 처리, 텍스트 추출 등 AI 기술이 사용됐다.


이를 통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2022년 마이데이터 사업을 시행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월 금융 마이데이터가 전면 시행된 후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총 69개 사업자가 1억1787만명의 가입자(올 2월말, 누적 기준)에게 금융정보 통합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는 신용정보업감독규정 개정안에 대한 규정변경을 예고했고 11월8일까지 마이데이터 2.0 방안을 추진한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개별 금융자산을 일일이 선택해서 연결·조회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업권별로 전체 금융자산을 한 번에 연결·조회할 수 있다.

금융위 측은 "마이데이터 2.0 방안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금융위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 연내에 시행할 것"이라며 "마이데이터 가이드라인을 반영한 사업자들의 시스템 개발은 2024년 1분기에 완료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툭 하면 터지는 금융사고… AI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개발

은행권은 AI기술을 내부통제 시스템에 적용하고 있다. AI는 직원의 금융 거래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심 거래를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기존 인력 중심 통제 시스템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작동할 것이란 기대다.

신한은행은 AI 활용 범위 확산에 따라 AI 분야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그룹의 'AI 거버넌스' 구축을 시작했다. 'AI 거버넌스'는 금융회사가 고객과 임직원을 대상으로 AI를 활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잠재 위험 요인을 식별해 사건이나 사고로 확대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관리 체계를 말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금융권 AI 협의회를 발족하고 생성형 AI 윤리지침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달 13일에는 '금융분야 망분리 개선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관련 논의가 가속화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이에 대한 발빠른 대응을 위해 ▲AI 윤리원칙 ▲조직별 역할 정의 ▲관련 내규 및 업무매뉴얼 작성 ▲위험관리방안 수립 등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그룹의 'AI 거버넌스' 구축을 시작했다.

AI 거버넌스는 지주회사가 먼저 모든 그룹사가 준수해야 할 윤리원칙 및 각종 기준을 정의하고, 이에 따라 그룹사가 AI기술 개발부터 운영 등까지 모든 단계에서의 내부통제 방안을 담은 내규와 매뉴얼을 마련해 연계하는 방식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AI거버넌스팀'을 설치해 AI 운영 방식 관련 가이드라인 수립과 리스크 관리 역할을 강화한다. 국민은행은 지난 2019년 'AI 혁신센터'를 설립했고 지난해 12월 부서 재편을 통해 'AI데이터혁신본부'를 확장 운영하고 있다. 생성형 AI 분야서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할 'AI비즈혁신부'도 만들었다. 또 'AI거버넌스팀'을 신설하는 등 가이드라인 정립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생성형 AI를 비롯한 최신 디지털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고객이 원하는 순간마다 최상의 디지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