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제품 창고에 수출을 앞둔 열연 제품들이 쌓여있다. /사진=뉴스1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품 창고에 수출을 앞둔 열연 제품들이 쌓여있다. /사진=뉴스1

정부가 중국산 후판에 이어 열연강판 반덤핑 조사에 착수하면서 제강사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제강사들은 중간재인 열연강판을 수입한 뒤 가공, 판매하기 때문에 반덤핑 관세가 부과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무역위원회는 일본·중국의 탄소강·합금강 열간압연 제품에 대한 덤핑사실 및 국내 산업 피해 조사에 착수했다. 연내 예비조사와 본조사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이번 조사는 현대제철의 반덤핑 제소에 따른 것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 국내 시세 대비 10~20%가량 저렴한 중국과 일본의 열연강판이 국내에 유입돼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무역위에 제소했다. 현대제철은 전방시장 악화에 따른 실적 악화로 저가 수입 철강재에 대한 반덤핑 제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보령 현대제철 판재사업본부장은 지난해 연간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판재 시황은) 저가 수입재에 대한 반덤핑 제소로 국내 유입량이 점차 감소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재) 일본 오퍼 가격이 조금씩 오르는 등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강사들은 열연강판 반덤핑 관세 부과가 과도한 처사라고 반발한다. 열연강판은 쇳물을 가공해 나온 평평한 슬래브를 고온으로 가열한 뒤 얇게 만든 강판이다. 제강사들은 열연강판을 수입해 가공한 뒤 자동차 강판, 선박 구조물, 건설·건축용 철근 등을 생산한다. 관세 부과 시 제강사들의 원가 부담이 가중되는 이유다.


제강사들은 고사 직전에 놓였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4분기 1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도금·컬러강판 전문회사 동국씨엠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29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세아제강의 영업이익은 513억원으로 전년 대비 증가했으나 북미향 수출 증가로 실적이 개선돼 실적 부진을 면했다.

제강사들은 최대 수요처인 건설 시장 침체로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의 '2025년 건설경기 전망'에 따르면 건설 경기 선행 지표인 건축 허가 면적은 지난해 총 1억2589만㎡로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 건축 허가받은 후 실제로 공사에 들어간 규모를 나타내는 착공 면적은 지난해 총 7931만㎡로, 허가 면적의 63.0%에 그쳤다. 2022년부터 3년 연속 평균치를 밑돌았다.

판로가 막힌 상황에서 반덤핑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제강사들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대적인 관세 정책으로 가장 수익성 높은 시장에서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원가 부담이 더해진다면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세 부과 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정부가 반덤핑 관세 부과에 나서면 중국 업체들이 열연강판에 단순 도금 등 최소 공정을 한 뒤 컬러강판으로 우회 수출할 수 있다. 보복 관세 등도 우려된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특임교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정한 조건과 가격에서 수출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정부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