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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18% 이상으로 끌어올리면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항공업 경험이 전무한 건설사가 항공사를 인수할 경우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항공기 운항과 정비, 승객 서비스 등 복잡한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업계 경험이 필수라는 분석이다.
돈만 있으면 하는 사업이었나... '현금부자' 호반 공세에 항공업계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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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호반그룹은 장내 매수를 통해 한진칼 지분율을 기존 17.44%에서 18.46%로 확대했다. 해당 매수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20.09%)와 호반그룹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격차는 1.63%포인트로 줄었다. 시장에서는 호반그룹과 조 회장 측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놨다.
호반그룹은 2022년부터 지난달까지 한진칼 주식을 꾸준히 매수해 왔다. 건설 경기 침체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어 신사업 진출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3년 그룹의 핵심 계열사 호반건설의 영업이익은 ▲2022년 5973억원 ▲2023년 4012억원 ▲2024년 2716억원으로 매년 감소세를 보였다.
호반의 공격적인 행보에 항공업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항공업 경험이 부족한 건설사가 항공사를 인수하거나 경영에 참여할 경우 국내 항공업 전체에 한계에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은 트렌드에 민감해 산업을 제대로 알아야 흐름을 읽고 대응할 수 있다"며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대한항공 경영진들은 30년 이상 항공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떨어진 경영진들이 통합 대한항공을 이끌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항공업은 자본력을 갖춰야 하지만 노동 집약적 산업 특성도 갖고 있다.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 조종사와 승무원은 물론 지상조업사 등 다수의 현장 인력이 투입된다. 이들의 숙련도와 전문성은 승객 안전을 좌우하는 만큼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운영 역량과 노하우가 항공사에는 필수적이다.
글로벌 항공사 및 항공기·엔진 제작사와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대한항공은 운항 규모가 크고 기단 관리 범위가 넓어 체계적인 협력망 없이 안정적인 운영이 어렵다. 항공업을 넘어 방산 사업까지 영위하고 있다는 것도 비전문 기업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요소로 꼽힌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를 호반그룹이 책임지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글로벌 변수 영향 커… 국가기간산업으로 책임감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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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은 유가, 환율, 각종 재해 등 대외변수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2019년 HDC현대산업개발은 2조5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했지만 코로나19로 재무 상황이 악화했다며 재실사를 요구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과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인수가 무산됐다. 충청권 기반의 중소기업 ㈜성정도 2021년 이스타항공을 인수했으나 코로나 여파로 경영난에 직면, 1년 7개월 만에 사모펀드에 회사를 넘겼다.
항공산업은 국가기간산업 중 하나로 국적 항공사의 생존은 국가 경제와 국민 편익에 직결된다.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3년간 항공사에 고용유지지원금과 기간산업안정기금 등을 지원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항공 면허 취득, 운수권·슬롯 확보, 취항 스케줄 조정 등 모든 영역에서 정부의 관리를 받는다.
대한항공과 같은 대표 국적사의 경영권을 적대적 M&A 방식으로 차지하려고 할 경우 국민 여론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은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로 30년 넘게 소비자 신뢰를 쌓아왔다. 이러한 기업을 항공업에 대한 이해 없이 인수할 경우 서비스 저하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을 이해하고 있는 쪽에서 혁신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접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국내 항공 산업의 구조 자체가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 메인 항공사의 지배 구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산업 전체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