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욱씨(33세·가명)는 청년들이 결혼을 결심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출발선을 마련해주는 공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서연 기자

"청년 관련 공약들을 보다보면 무조건 퍼주겠다는 말만 반복하거나 현실에 비해 너무 거창한 얘기들이 많아요. 예전처럼 결혼해서 둘이 무언가를 이뤄가는게 어려운 시대잖아요. 추상적인 구호들만 내미는 정부를 신뢰하고 결혼이나 출산을 감행할 2030은 없다고 봐요.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지 따져보고 현실적인 유인책을 제시하는 후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권상욱씨(33세·가명)는 내년 봄 여자친구와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대학 졸업 뒤 바로 취업에 성공한 권씨는 올해 7년차 '프로직장러'가 됐다. 회사생활을 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 목표금액을 달성한 권씨는 지난해부터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권씨가 결혼 준비에서 유일하게 바라는 건 두 사람이 편히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집 한 채다. 이공계 연구소에 재직 중인 권씨는 매일 셔틀버스에서 왕복 4시간을 보내는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회사에서 가까운 광교 등을 중심으로 신혼집을 알아보는 권씨의 마음은 기대보다 걱정쪽으로 기울고 있다. 5월 기준 광교 신도시 내 전용면적 약 84㎡(약 28평)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9억6000만원에서 10억2500만원 사이다.

'위장 미혼' 만드는 신혼부부 대출… 내집 마련 도와주는 실질적인 정책 절실

결혼은 했지만 법적으로는 남남처럼 남아 각자 대출을 받고 자산을 분리하는 '제도적 분가'가 현실적인 신혼부부의 전략이 되고 있다. /그래픽=Chat GPT

"둘이 모은 돈과 부모님께 지원 받은 돈까지 합쳐도 대출없이 집 마련하기는 어려워요. 결혼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전에는 신혼부부 대출지원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대출 대상에서 아예 제외 되더라고요"

버팀목 대출은 연소득 7000만원 이하(맞벌이 기준 8500만원 이하) 신혼부부에게 최대 2억 2000만 원까지 저리로 전세보증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디딤돌 대출은 연소득 6000만원 이하(맞벌이 7000만원 이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최대 2억 원까지 주택 구입 자금을 지원하지만, 주택가격 5억원 이하, 전용 85㎡ 이하 등 까다로운 요건이 붙는다.

"결혼한 학교 선배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로 각각 대출 받아서 집 마련했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는 꼼수같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제가 결혼할 상황이 돼서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보다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혼인신고를 하면 주택 수, 소득이 합산돼 자격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미혼 상태에서는 개인 소득 기준으로 대출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때문에 실제 결혼은 했지만 법적으로는 남남처럼 남아 각자 대출을 받고 자산을 분리하는 '제도적 분가'가 현실적인 신혼부부의 전략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남편이 생애 최초 구입자로서 디딤돌 대출을 받아 주택을 매입하고, 아내는 청년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통해 같은 집에 세입자로 입주하는 방식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무주택 세대주 자격을 유지한 채 각각의 조건에 맞는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실수요자에 맞춘 대출·실거주 규제… 현실과 유리된 정책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신혼부부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초혼 신혼부부 76만 9000쌍 중 자녀가 없는 부부는 전체 47.5%(36만 5000쌍)로 전년(46.4%)보다 1.1%p 늘었다. 경제활동별로 맞벌이 부부 중 자녀가 있는 부부는 49.6%로, 외벌이 부부(57.4%)보다 7.8%p 낮았다. 주택을 소유한 부부의 유자녀 비중은 58.3%로 무주택 부부(48.6%)보다 9.7%p 높았다. 주택을 소유한 부부의 평균 자녀 수는 0.70명으로 무주택 부부(0.57명)보다 0.13명 많았다. /그래픽=뉴스1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 후 혼인신고까지 걸린 기간이 2년 이상인 비율이 2023년 기준 8.15%로 증가했다. 2022년 신혼부부 통계조사는 전체 신혼부부의 89%가 금융권 대출을 끼고 있으며 평균 대출잔액은 평균 대출잔액은 1억8361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소득 1억원 이상 부부의 36.1%는 대출 3억원 이상 보유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회사 다니는 동안 안오른 부동산이 없어요. 집값 오른다는 말 들을때마다 불안해서 아이가 없을때 미리 집을 사놓을까 고민해요. 그런데 대부분 살고 싶은 지역은 전세가 안되고 실거주 요건을 채워야 하니까 쉽지 않죠."

권씨가 고려 중인 광교와 판교 지역은 모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으로 지정돼 실거주 요건이 붙는다. 집을 사더라도 바로 입주하지 않으면 전세를 놓을 수 없고, 일정 기간 주소 이전도 제한된다. 실거주 수요자를 위한 정책이 오히려 이사와 생애 첫 매입 시점을 조절하려는 실수요자에겐 '지정된 타이밍'만 허용되는 불합리한 규제로 작용하는 셈이다.

"집이 안정이 안되면 사실 아이를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출산의 제일 큰 이유는 집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디서든 시작하면 됐지 욕심이 너무 많다고 꾸짖는 어른들이 많으세요. 그런데 저희 세대는 생각이 좀 달라요. 아이한테 좋은 삶을 물려주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직장 들어가려고 한거니까요"

2022년 기준, 주택을 소유한 신혼부부의 유자녀 비율은 59.6%로, 무주택 부부(49.5%) 보다 10.1%포인트 높았다. 또한 평균 자녀 수도 주택 보유 가구가 0.72명, 무주택 가구는 0.59명으로 0.13명 차이가 났다.

비현실적인 수혜형 정책보다는 '인센티브' 필요한 시기

4월 민간아파트 공급 물량이 전월 대비 2배 이상으로 늘고 1순위 청약경쟁률도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2025년 4월 전국 아파트 분양 물량은 1만3262가구로 집계됐다. 3월(5656가구)과 비교해 134% 증가한 것으로, 1분기(1~3월) 전체 공급 물량(1만2857가구)보다 많았다. 사진은 1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공사현장. /사진=뉴시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권씨는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도 꼼꼼히 챙겨봤다고 한다. 그가 꼽은 가장 현실적인 청년 주택 마련 정책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경선 후보의 정책이다.

"이준석 후보 공약은 처음부터 큰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전제로 해줘서 좋았어요. 한 번 집을 사면 되팔 때마다 세금 부담이 커져 이사를 엄두를 내기 어렵거든요. 살면서 바뀌는 가족 구성에 맞춰 자연스럽게 집을 옮겨갈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 좋았죠" 라고 말했다.

이준석 후보는 전용 59㎡ 이하 소형 주택을 매입할 경우 취득세를 감면하고, 자녀 출산 등 생애 이벤트에 따라 넓은 평형으로 옮길 경우 취득세와 양도세를 비과세하는 방안을 내세웠다.반면 한동훈 후보의 청년 대상 LTV 규제 완화 공약은 집을 사려는 청년층에게는 즉각적으로 도움 되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권씨는 해당 공약이 DSR 규제에 대한 보완이 빠졌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욕심이 많아서 결혼 못하는 거다, 어디서든 둘만 좋으면 힘들어도 헤쳐나간다는 말이 싫어요.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 궁핍하게 살아야 한다면 안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청년들이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해주는 정책을 고민해줬으면 좋겠어요."

권씨는 자신을 비롯한 2030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닌 '현실적인 출발선'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노력해서 직장을 잡고, 돈을 모아도 내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현재의 상황이 결혼과 출산을 개인의 '희생'으로만 치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감사해야 할 혜택'이 아니라, 감당 가능한 시작점이며 그것을 만들어주는 게 바로 지금 대선이 다뤄야 할 진짜 청년 정책이라는 것이 권씨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