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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에게 R&D(연구·개발) 비용 삭감은 치명적입니다."
지난 26일 만난 김민지씨(27)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대 '인지과학 협동과정' 석사를 준비하는 대학원생이다.
김씨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다. 'AI 시대에서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는가'와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등이 그 예시다. 원래는 인문학으로 분류되지만 공학 영역을 합친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는 않아 김씨는 보통 오전 10시쯤 연구실에 도착한다.
그는 "처음 출근하면 그날 해야 할 일을 확인한다"며 "학교 수업도 중간중간 병행하고 있어 오전에 수업과제를 하거나 행정적인 업무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는 주로 연구실 동료들과 서울대 학식을 먹는다. 오후에는 현재 진행 중인 여러 연구에 대해 '랩 미팅'을 열어 연구 진행 상황을 공유한다.
김씨는 "미팅은 주로 센터장인 지도교수나 타대학 석·박사생들이 함께 참여한다"며 "오후 수업 및 미팅이 끝나면 보통 오후 3~4시 정도인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연구 과정은 실제 실험뿐만 아니라 기존에 나온 논문들을 읽고 분석하는 시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일찍 퇴근하면 오후 6시이지만 밤 11시까지 연구실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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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현재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김씨는 "대부분의 대학원생은 생활비나 등록금에 부담을 느낄뿐더러 지금 당장 연구를 진행해서 결과물이 나오는 상황은 더 아니다"며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고급 인력'이 너무 많아 당장의 석·박사생이 졸업 후 사회에 설 자리가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돈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면 지속가능한 커리어를 만드는 데 제약이 많다"며 "연구자의 관심사, 학계 동향, 충분한 연구비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미국·일본·유럽 등에 비해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국가"라며 "한정된 재원에서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비 지출이 적다는 점은 분명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젠 인문·공학 합친 '융합연구'의 시대… 지원 강화돼야"
비교적 생소한 융합연구 분야에 대한 지원도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김씨는 "쉽게 말해 융합연구는 문·이과 중 하나로 특정지을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연구방법"이라며 "사회가 다변화하며 여러 주제를 융합해 연구하는 대학원생의 수가 계속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요즘에는 AI 기술이 정말 많이 발전하면서 이를 인문학과 같이 연구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며 "심리, 경제, 바이오 등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목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에는 인문학과 공학은 각자 비슷한 속도로 발전해 왔으나 현재는 공학 분야가 압도적으로 추월했다"며 "AI의 고도화된 발전으로 인해 지식의 값이 싸지면 공학 분야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이 요구될 것이기 때문에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 중 하나가 바로 융합연구"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융합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을 위한 관심과 지원 강화가 절실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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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R&D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김씨는 "R&D 예산은 연구자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원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한정된 연구비와 한정된 시간으로 새로운 가설을 증명해야 하는 데 예산 삭감한다는 것은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뒤 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면서도 "아무리 좋은 연구 주제나 아이디어가 있어도 예산이 부족하면 진행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만약 연구비가 충분하다면 고가장비를 사용해 실험군을 늘리거나 외주를 맡기는 등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며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연구 집단에 R&D 예산 삭감은 치명적"이라고 언급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씨가 제21대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은 '학계와의 소통'이다.
김씨는 "R&D 예산 삭감 같은 논의는 결국 학계와의 소통이 부족해 벌어진 처사라고 생각한다"며 "소통을 잘해야 자연스럽게 열린 리더십으로 연결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양질의 연구성과는 1~2년의 짧은 세월이 아니라 3~4년까지도 필요할 만큼 긴 시간이 요구된다"며 "지지율을 위한 단발적인 정책보다는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리는 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연구는 당장 사람들에게 피부로 와닿진 않으나 결국 사회를 바꾸는 힘"이라며 "우리가 아플 때 먹는 약, 하다못해 한국인의 '필수 아이템'인 라면수프마저도 수많은 연구원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결과물"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