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어디에 기울여야 할까. 한평생 회사에 몸 바치며 살아온 한 직장인과, 회사는 그저 돈 버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직장인이 함께하고, 배신한다. '소주전쟁'은 소주 회사 인수전의 탈을 쓴, 두 사람의 처절한 생존기였다.
30일 개봉한 '소주전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소주 회사가 곧 인생인 종록(유해진 분)과 오로지 성과만 추구하는 글로벌 투자사 직원 인범(이제훈 분)이 대한민국 국민 소주의 운명을 걸고 맞서는 이야기다. 영화는 당시 진로그룹 인수전을 모티브로 삼았다.
'소주전쟁'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대한민국 소주 판매율 1위인 국보소주가 자금난에 휘청거리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뉴욕에 위치한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 인범은 이 타이밍을 눈여겨 보고 국보소주 매각을 위해 회사에 자문 역할로 접근한다. 국보소주가 곧 자신의 인생인 국보그룹의 재무이사 종록은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스마트한 인범에게 오롯이 의지하고, 인범에게 신제품 소주 맛을 알려주며 진심을 내보인다. 인범은 매일 같이 종록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친분을 다지지만, 1000억 원으로 회사를 삼키려는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간다. 종록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회사를 지키기 위해 법무법인 무명의 변호사 구영모(최영준 분)를 만나고, 직접 소주 판촉까지 나서며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기업을 자신의 소유로만 여기는 비도덕적인 경영인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자 하는 해외 투자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수 과정을 다루며 돈만 좇는 행태를 꼬집는다. 다만 영화는 디테일하게 경제 용어를 설명하지 않는 대신 자연스레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인수전의 결과보다는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 변화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국보소주 인수전 자체의 이야기는 다소 밋밋하게 그려지고 전개가 느슨하게 이어져 아쉽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영화를 꽉 채웠다. 이제훈은 영악하다가도,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려는 다층적인 인범의 모습을 자연스레 풀어냈다. 글로벌 투자사 직원인 만큼 어려운 영어 대사도 소화해야 했는데, 어색하지 않게 완성했다. 석진우 역의 손현주는 분노를 끌어올리는 재벌 회장의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해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나 종록은 석진우 회장에게 충성하는 듯하지만 쓴소리도 하는 인물이다. 회사가 곧 자신의 인생이라 생각하는 답답한 모습도, 그 누구보다 직원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자칫 평면적인 인물로 다가올 수 있으나 유해진은 종록의 녹록한 삶을 인상 깊게 그려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한 뒤, 소주 한 잔에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종록의 고군분투를 고스란히 담아내 울림을 안긴다.

'소주전쟁'은 "회사가 잘 돼야 내가 잘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종록과 "일은 일이고, 인생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인범의 만남을 통해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공감대를 더한다. 두 사람도 선한 인물은 아니지만, 소주 한 잔을 나눠 마시며 나름의 생존 이유를 털어 놓는다. 그러나 이 사이에서도 소주 대신 양주만 즐겨 마시며 소주회사 인수전을 벌이는 회장과 투자사의 모습은 못내 씁쓸하게 다가온다.
한편 최윤진 감독은 현장 연출로 표기된 상황이다. 지난 27일 법원이 해촉자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소주전쟁'은 감독 크레디트 없이 개봉하게 됐다. 30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