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우리가 신호등의 녹색불을 보고 "파란불이 켜졌다"고 말하는 이유에 대해 전 세계 7000개 언어를 분석해 '경험이 없으면 언어도 없다'는 답변을 얻어낸 책이 나왔다.
새 책 '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은 세상 모든 언어에 보편적인 규칙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는 오래된 통념을 뒤집는다.
저자는 아마존, 동남아시아, 태평양, 오세아니아 등지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영어가 아닌' 언어들을 면밀히 설명하면서 언어가 삶의 방식과 인식을 형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양한 어족과 지역의 언어에 주목한 수많은 연구를 바탕으로 시제(1장), 공간(2장), 친족(3장), 색상과 냄새를 가리키는 낱말(4장), 기본 어순(8장)에 이르기까지 언어 간 차이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언어별로 미래와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 영어와 한국어에서는 미래가 앞에, 과거가 뒤에 있다고 표현하지만 아이마라어에서는 정반대다.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약 300만 명이 사용하는 아이마라어는 과거를 앞에, 미래를 뒤에 둔다. 이들은 과거는 이미 경험해 아는 것이기 때문에 앞에 두며 미래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기 때문에 뒤에 둔다. 이런 인식은 몸짓에도 반영돼 미래를 가리킬 때 뒤를 가리킨다.
또다른 예를 들자면, 그린란드에 사는 이누이트족은 영어 단어 '눈'(snow)과 관련한 낱말이 다양하다. 카나(내리는 눈), 피크시르포크(떠다니는 눈), 키무크수크(이미 떠 있는 눈), 아푸트(땅 위에 있는 눈) 등이 있다.
저자는 이런 차이에 대해 추운 지방에 사는 이누이트족이 여러 종류의 눈을 실제로 경험하고 눈을 중심으로 행동과 계획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부족은 눈을 전혀 모른다. 이들은 눈을 가리키는 다양한 어휘는 물론 기본 낱말조차 없다.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책은 언어·문화 다양성 연구에서 얻은 핵심적 발견을 살펴보고 세상 모든 언어에는 보편적인 규칙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는 오래된 상식을 뒤집는다.
△ 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케일럽 에버렛 씀/ 노승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