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0차전 대한민국과 쿠웨이트의 경기, 홍명보 감독이 4대0 승리 후 이강인을 격려하고 있다. 2025.6.10/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지난 1년 동안 선수들을 많이 만났고, 내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다.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성격과 성품의 소유자인지부터 파악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며 느낀 게 많다. 이제 그것을 토대로 팀을 잘 만들어 가야한다. 선수 파악은 끝났다. 10여 년 전과는 다르다."

최근 만난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의 말이다. 그가 언급한 10여 년 전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가리킨다. 감독으로서 첫 월드컵이자, 홍명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시간이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둔 시점의 한국 축구는 어수선했다. K리그 최강 전북현대를 이끌던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이 아시아 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이끌다 소속팀으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본선 티켓을 따냈으나 후임자가 마땅치 않았다. 그때 소방수가 홍명보 감독이다.

2009년 FIFA U-20 월드컵 8강,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등 큰 성과가 있었으나 아직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위의 조언과 만류가 있었으나 딱히 대안은 없었고, 그렇게 홍명보호는 출항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당시 대표팀은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탈락했고 홍 감독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불명예 퇴진했다.


참패로 끝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한국 축구에도, 홍명보 감독에게도 큰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마냥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을 1년을 남긴 시점에 대표팀을 맡아본 적이 있다. 당시엔 선수 파악으로만 시간을 다 보냈다"면서 "나름대로 선수들을 다 시험해봤는데, 결과적으로 (본선에서)선택할 자원이 그 선수들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홍명보호의 베스트11은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만 기용한다'는 비판을 넘어 '의리 축구'라는 조롱까지 나왔을 때다.

런던 올림픽 시절을 비롯, 자신이 알고 있던 선수들로도 충분히 월드컵에서 경쟁력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젊은 지도자 홍명보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틀렸고, 그 선택과 함께 한국축구도 자신도 큰 상처를 입었다. 국민 영웅이 역적으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강산이 흐르는 시간이 흘러 어느덧 중년이 된 지도자 홍명보 앞에 다시 도전 기회가 열렸다. 감독으로 두 번째 월드컵,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마주한 그는 '실패한 자신'을 반면교사 삼는 것으로 시작했다.

취임과 동시에 유럽으로 날아가 손흥민을 비롯해 이강인, 이재성, 김민재, 황희찬 등 기존의 주축 멤버들을 만났고 양현준, 배준호, 이한범, 오현규, 이영준 등 중소리그에서 막 도전을 시작한 젊은 피들을 향한 레이더망도 가동했다. 중동과 일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체크했고 국내에 머물 땐 K리그 경기장을 찾아 옥석을 가렸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0차전 대한민국과 쿠웨이트의 경기, 홍명보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25.6.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주축 자원과 뒤를 받칠 자원을 광범위하게 파악하면서 아시아 예선이라는 실전 경기를 10회나 치렀으니 감독 입장에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소속팀에서 뛰는 것을 보는 것과 소집해서 함께 훈련을 해보는 것 그리고 실제 경기에 투입해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는 그의 말처럼,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노력 속에 일단 인재풀은 마련했다.

홍명보 감독은 쿠웨이트와의 최종 10차전이 끝난 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 6월 어떤 선수가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느냐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10년 전에는 그걸 놓쳤다"면서 "그때 가장 좋은 폼을 보이는 선수를 선발할 것이다. 남은 기간 계속 선수들을 면밀하게 체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1년 뒤 우리 선수들의 상황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지금까지 팀을 지탱해 온 선수들이 있고 그들이 주축인 것은 맞지만, 아직 우리 팀 베스트 멤버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선수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무한 경쟁을 선언했다.

자신이 어떤 카드를 활용해 어떤 조합을 만들 수 있는지 충분히 파악한 홍명보 감독. 10년 전에는 이 과정만 거치고 곧바로 본선에 나갔는데 이번에는 1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 최종 결과야 알 수 없지만, 바다로 나가기 전부터 위태롭던 그때보다는 더 희망적이고 기대감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