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5일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최종전에서 일본에 0-1로 석패, 2승1패 2위로 대회를 마쳤다. 2019년 부산 대회 이후 6년 만에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정상 탈환을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일전 패배'라는 쓰라린 결과와 함께 트로피를 들지 못했으니 실패라는 단어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출발할 때 취지를 떠올리면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6월 월드컵 예선을 마치며 홍 감독은 "지금까지 팀을 지탱해 온 선수들이 있고 그들이 주축인 것은 맞지만 아직 우리 팀 베스트 멤버는 정해지지 않았다. 기존의 베테랑들을 지원해줄, 강력한 젊은 선수들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그동안 K리그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생활하고 지도하면서 훈련할 시간이 생긴 것은 좋은 기회다. 월드컵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 목표라면 성공적이다. 11년 전 자신도, 지켜보는 이들도 불안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홍명보호는 꼭 필요한 단계를 잘 밟아나가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 후다. 실패했던 과정과 이후의 일들을 생각하면 끔찍하기에, 솔직히 다시 대표팀을 맡고 싶지 않았다.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것이 두려웠고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딱 1년 전, 2024년 여름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취임했을 때의 고백이다. 그의 말처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선수로, 지도자로 승승장구했던 홍명보의 축구인생에 있어 최악의 시절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는 어수선했다. K리그 전북현대를 이끌던 최강희 감독이 아시아 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이끌다 전북현대에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본선 티켓을 따냈으나 후임자가 마땅치 않았다. 그때 축구협회가 택한 인물이 홍명보 감독이다.
아직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조언과 만류가 있었으나 끝까지 대안을 찾지 못했고, 결국 급하게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불명예 퇴진했다.
당시 홍명보호 실패는, 준비가 부족했음에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오판에서 출발했다. 홍 감독 역시 "그땐 선수 파악으로만 시간을 보냈다. 나름대로 선수들을 다 시험했으나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본선에서 선택할 자원들이 그 선수들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확인한 자원이 한정적이었으니 본선 무렵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대안이 없었고, 제한된 선수들로 모두가 예측 가능한 전술을 들고 나왔으니 상대의 대응은 수월했다. 그때의 쓰라린 실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홍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으며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취임과 동시에 유럽으로 날아가 손흥민을 비롯해 이강인, 이재성, 김민재, 황희찬 등 기존의 주축 멤버들을 만났고 양현준, 배준호, 이한범, 오현규, 이영준 등 중소리그에서 막 도전을 시작한 젊은 피들을 향한 레이더망도 가동했다. 중동과 일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체크했고 국내에 머물 땐 K리그 경기장을 찾아 옥석을 가렸다.
주축 자원과 뒤를 받칠 자원을 광범위하게 파악하면서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라는 실전 경기를 10회나 치렀다. 그리고, 본선 티켓이 걸려 있다는 부담 때문에 예선에서 쓰지 못한 '물음표 자원'들은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체크했다.
일본전을 앞둔 마지막 훈련에서 홍 감독은 "내일 결과를 떠나서 대표팀에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다. 열흘 정도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 게 많다"면서 "1년 후의 일(월드컵 본선)을 지금 미리 이야기 하는 건 성급할 수도 있지만,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가 몇 명 있다. 좋은 시간이었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경기장은 대회 내내 썰렁했고 도대체 왜 동아시안컵을 해야 하는가 회의적인 목소리도 들렸으나 이런 기회가 있으니 A매치를 뛰는 젊은 선수들도 볼 수 있고 본선을 대비한 플랜B도 가동할 수 있는 것이다.
홍 감독은 "대회 내내, 대표팀 분위기는 아주 뜨거웠고 선수들은 하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선수들에게도 감독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