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284에서 무료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문화역서울284 외관. /사진=김다솜 기자

서울역 1번 출구를 나서 도보 5분. 따가운 햇빛에 시민들은 빠른 속도로 뿔뿔이 흩어졌다. 기자는 익숙한 벽돌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은 '구 서울역'으로 불리는 문화역서울284다.

문화역서울284는 1925년 개장해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초기 경성역 모습으로 복원해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284는 옛 서울역 사적 번호에서 따왔다.


폭염과 장마가 반복되는 요즘 문화역서울284는 실내 피서지이자 쉼이 가능한 복합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모습은 색다른 감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뜨거운 햇볕에 지치게 되면 잠시나마 '나만의 낙원'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문화역서울284 내에 자리한 '우리들의 전시' 작품들. /사진=김다솜 기자

공간, 시간, 감정이 흐르는 건축

문화역서울284는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비잔틴 양식이 살아 있는 서울 유일의 100년 근대건축물이다. 과거의 대합실은 전시장으로, 2층의 황금빛 그릴룸은 예술가들의 워크숍 공간으로 바뀌었다.

돔형 천장, 붉은 벽돌 외벽, 고풍스러운 유리창 등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곳을 걷다 보니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시간을 지나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에게 낙원은 어떤 모습인가요?

사진은 '우리들의 낙원' 전시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이곳에선 낯설지만 따뜻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낙원'이라는 장소 혹은 감정을 21명(팀)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VR, 사진, 설치, 영상, 몰입형 미디어아트, 인공지능, 조각,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이번 전시는 관람자의 감정과 반응을 유도하는 몰입·체험형 전시라고 느껴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관람객 MBTI에 따라 추천 동선을 제시하는 '낙원 타입 가이드'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감성형, 탐험형, 연결형 등 가장 적합한 '낙원의 경로'를 선택해 동선을 따라가면 된다. 작품 중 일부는 관람자의 참여에 따라 반응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었다. 기자가 좌우로 움직이자 눈동자가 움직이더니 빛, 소리 등이 반응하면서 '관계 맺기'가 시작됐다. 가장 좋아하는 색을 고르면 나만의 '낙원 방향'을 추천해주는 작품도 있다.
사진은 체험형 공간을 관람 중인 관람객들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이밖에 체험형 공간인 '희망약국', 정서 기반 상품을 다루는 '행복상점', 아티스트 참여 워크숍 등 볼거리가 다양했다.

여름 실내 데이트로서의 완벽한 조건

사진은 '우리들의 낙원'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기자가 찾은 이날은 캐리어를 끌고 전시를 관람하는 외국인 여행객, 수첩에 감상을 적고 있는 남성,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는 중년 여성들 등이 가득 자리했다.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방에서 만난 직장인 김수연씨(29)는 "전시 제목이 '낙원'이라 처음엔 막연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전시였다"면서 "낙원이라는 테마가 너무 추상적이라 도전하지 못했다면 전시가 끝나기 전 빨리 와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세 자녀와 함께 이곳을 찾은 한혜리씨(53·서울 용산구)는 "날이 너무 더워서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는데 그냥 '시원한 공간'이 아니라 굉장히 흥미로운 공간"이었다면서 "아이들이 방학이라 무료 전시장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아이들도 재밌게 보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오기에도 추천한다"고 말했다.

도심 한가운데서 감각적인 콘텐츠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곳을 꼭 방문해보길 바란다. 작품의 난이도가 무겁지 않아 가볍게 방문할 수 있지만 울림은 깊다. 무더위 속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며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우리들의 낙원' 전시는 오는 27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