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제품 창고에 수출을 앞둔 열연 제품들이 쌓여있다. /사진=뉴스1

정부가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예비판정을 내리면서 고로사와 제강사 간 희비가 엇갈린다. 시장 가격 안정과 유통 질서 회복을 기대하는 고로사와 달리 제강사들은 공급망 왜곡과 비용 부담을 우려하며 '반쪽짜리 제소'라고 비판한다. 이번 결정으로 후공정 제품 형태로의 우회 수입이 증가해 자국 산업 보호라는 반덤핑 제도의 본래 목적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최근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이 국내 산업에 실질적인 피해를 유발했다고 판단하고 반덤핑 관세 부과가 타당하다는 예비판정을 내렸다. 중국산에 28.16~33.1%, 일본산에 31.58~33.57%의 잠정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지난 2월 국내 철강업체들의 청구에 따라 착수한 조사에 따른 것으로 무역위는 약 3개월 이내에 최종 판정을 내릴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철강산업 전반의 가격 정상화를 유도하고 국내 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고로사들은 이번 예비판정을 반긴다. 이들은 중국산과 일본산 열연강판이 지속해서 국내 유통시장에 저가로 공급되면서 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저해해왔다고 주장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수입산 열연은 국내산 대비 최대 10%가량 낮은 가격에 유통되며 가격 질서를 흔들어왔다.

반덤핑을 제소한 현대제철은 "이번 열연 반덤핑 예비판정은 중국, 일본산 저가 철강재의 불공정 거래로 인해 국내 산업이 입은 실질적인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조치"라며 "향후 본조사 과정에서도 국내 산업 보호와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동국제강, 세아제강 등 전기로를 보유한 제강사들은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고로사와 달리 열연강판을 외부에서 수입해 냉연, 도금강판 등 2차 제품을 생산하는 이들에게 열연강판은 최종 제품이 아니라 가공을 위한 원자재다.

제강업계는 반덤핑 제소의 방식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철강 밸류체인 상단에 위치한 열연강판만을 제소할 경우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식으로 냉연, 도금, 컬러강판 등 후공정 제품 형태의 우회 수입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수입 물량은 줄지 않고 국내 기업들만 조달 부담을 떠안을 우려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열연 하나만 누른다고 해서 공급망 전체가 안정화되진 않는다"며 "도리어 수입 루트만 더 복잡해지고 중소 철강 가공업체까지 줄줄이 조달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중국계 철강사가 후판의 반덤핑 관세를 피하기 위해 눈속임 후 한국으로 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컬러후판 등 전처리 후판은 HS코드상 일반 열간압연 후판과 구분돼 있어 잠정 반덤핑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컬러후판은 탄소강 후판에 니켈이나 아연을 입히거나 간단한 도장(페인트) 공정만 거쳐도 다른 품목으로 분류돼 수입 규제를 피할 수 있다. 무역위원회가 제시한 HS코드는 비표면 처리 후판에 국한돼 있어 이같은 제도적 틈새를 활용한 우회 수출이 가능하다.

국내외 전방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원자재 비용 상승이 현실화하면 국내 후공정 제품의 글로벌 가격 경쟁력이 더욱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건설, 자동차, 가전 등 주요 수요산업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급 단의 가격만 올라가면 제품 전반에 대한 가격 전가가 어려워지고 수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철강 밸류체인상 상단에 있는 열연강판을 제소해봤자 냉연, 도금, 컬러강판 같은 후공정 제품으로 우회 수입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수입선 차단이 곧바로 산업 보호로 이어진다는 사고는 현장의 공급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