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한국과 일본 현대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재일 화가 곽덕준이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7일 갤러리현대에 따르면, 곽덕준 작가는 지난달 26일 교토에서 급성 심부전으로 별세했다. 가족들만의 애도 기간을 거친 후 이날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한다고 밝혔다.
곽덕준은 1937년생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실험미술의 전개 과정에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인물이다. 특히, 1970년 당시 구겐하임 큐레이터 에드워드 프라이에게 극찬을 받은 '계량기' 시리즈는 한국 작가로서 가장 빠른 개념미술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1974년 발표한 '대통령과 곽' 시리즈는 미국 대통령의 얼굴 절반과 자신의 얼굴을 결합하는 파격적인 시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곽덕준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며 재일 한국인으로서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고뇌는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굴곡진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묻는 블랙 유머적인 개념미술로 승화됐다.
그는 회화, 설치, 퍼포먼스, 영상, 사진, 판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업들을 선보이며, 기존 관념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세계 인식의 무의미함을 탐구했다. 1980년대 '반복' 시리즈, 1990년대 '무의미' 시리즈 등 그의 대표작들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 현실과 의식의 문제를 일관되게 풀어내며 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곽덕준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정신은 2014년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개인전 '곽덕준, 1960년대의 회화를 중심으로'와 2022년 광주 비엔날레 참여를 통해 다시 한번 조명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01년 부산시립미술관의 '재외작가전: 곽덕준'과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 곽덕준'을 기점으로 널리 알려졌다. 갤러리현대에서는 '한국 실험미술 작가 다시 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의 개인전을 두 차례 기획하며 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한 바 있다.
고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은 물론,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오사카 국립미술관, 요코하마 미술관 등 일본의 유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유족으로 부인 김나나 씨, 딸 리리 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