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텐프리 식품이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담은 식문화의 새로운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한국글루텐프리인증마크. /사진=KGFC 인증사업단

우리의 식탁이 변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설탕과 나트륨을 '줄이던 시대'를 지나 식재료 자체를 '바꾸는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우리 쌀이 있다. 쌀은 글루텐이 없는 탄수화물로 소화가 잘되고 부드러운 식감과 풍부한 영양을 지닌 건강 식품이다. 최근 쌀을 주원료로 한 글루텐프리(gluten-free) 식품이 빠르게 확산하며 기능성과 맛을 모두 갖춘 새로운 K푸드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추진하는 '한국글루텐프리인증(KGFC)' 제도는 국산 쌀가공식품의 품질과 신뢰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며 국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건강과 안전을 중시하는 소비 흐름이 식품산업 전반을 바꾸고 있다. 설탕·나트륨·첨가물 등을 최소화하는 '프리'(Free)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글루텐프리 식품은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담은 식문화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쌀가공 기술의 고도화와 맞물려 한국의 글루텐프리 식품은 '과학과 건강이 결합한 혁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루텐은 밀, 보리, 호밀 등에 포함된 단백질 복합체로 반죽의 쫄깃한 식감을 만드는 핵심 성분이다. 전문가들은 글루텐 성분이 일부 사람들에게 소화 장애나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며 주의를 권고하고 있다. 셀리악병(Celiac disease) 환자나 비(非)셀리악 글루텐 민감성(Non-Celiac Gluten Sensitivity)을 가진 사람, 밀 알레르기나 아토피 환자에게는 글루텐프리 식단이 필수적이라는 권고다.

한종수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국내 셀리악병 유병률은 낮지만 글루텐 민감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라며 "복부 팽만이나 복통, 피로감이 반복된다면 글루텐프리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고 조언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의 알레시오 파사노(Alessio Fasano) 박사도 "셀리악병이 없는 사람 중에도 글루텐에 민감한 경우가 많으며 글루텐프리 식단을 통해 증상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글루텐 민감성 인구는 셀리악 환자보다 6~7배 많다"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식품인증에 비용 50% 국고지원

글루텐프리 인증 제품들. /사진=한국쌀가공식품협회

세계적으로 글루텐프리 식품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글루텐프리 식품 시장 규모는 2021년 78억달러(약 11조2000억원)에서 2026년 116억달러(약 16조6800억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지만 아시아 시장의 성장 속도도 빠르다. 국내 역시 건강 중심 소비가 확산하면서 밀을 대체할 수 있는 쌀가공 기반 식품산업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고 있다.

국산 쌀은 글루텐이 없는 천연 원료로 안전성과 기능성을 모두 갖춘 식품 소재다. 최근 쌀국수, 쌀빵, 쌀과자, 냉동떡, 즉석죽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하며 쌀가공식품이 '건강한 대체식'에서 '글로벌 K푸드'로 진화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8년까지 쌀가공식품 수출액 4억달러(약 57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세우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글루텐프리인증'(KGFC)이 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박병찬 회장)는 2021년 한국글루텐프리인증제도를 도입하고 산하에 한국글루텐프리인증사업단(Korea Gluten Free Organization)을 설립했다. 이 제도는 원료 입고부터 제조, 포장, 출하까지 전 과정에서 글루텐 오염을 관리하고 제품 내 글루텐 함유량이 20mg/kg 이하임을 검증한다. 심사는 서류·공장·제품 3단계로 이뤄지며 평균 1~2개월이 소요된다.

인증을 받은 기업은 제품 포장에 KGFC(Korea Gluten Free Certification) 공식 마크를 부착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가 제품의 안전성과 품질을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김혜영 경희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KGFC 인증위원)는 "글루텐프리 인증은 민감성 소비자가 안심하고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안전장치"라며 "건강 문제뿐 아니라 식문화 다양성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라고 말했다.

KGFC 인증사업단은 중소기업의 참여 확대를 위해 인증비용의 50%(최대 400만원)를 지원한다. 실무 교육비의 절반을 보조하는 '인증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인증 준비 과정에서는 품질관리 담당자 교육과 현장심사를 병행하며 인증 이후에도 사후관리 및 재심사를 통해 품질을 지속적으로 검증한다. 또한 국내외 식품 전시회와 박람회 참가, 언론 보도, SNS 홍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인증제품의 인지도와 판로를 확대하고 있다.

인증식품, 국민건강·수출경쟁력 동시 강화

2023년 영국 런던 엑셀에서 열린 '천연/유기농 박람회'에 참가한 모습. /사진=한국쌀가공식품협회

KGFC 인증을 획득한 기업은 롯데웰푸드, 농심미분, 오뚜기, 진미식품, 웰빙가든, 베베쿡 등 점차 늘어나고 있다. 스낵·장류·면류·이유식 등 다양한 제품군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 기업은 '건강한 맛'과 '안심 품질'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더쌀로' 스낵 시리즈로, 진미식품은 장류, 웰빙가든은 면류, 베베쿡은 영유아식품에서 각각 인증을 획득하며 품목 다양화를 추진하고 있다.

글루텐프리 인증이 확대되면서 'K글루텐프리' 브랜드의 수출 경쟁력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 중동 지역에서는 글루텐프리 인증 표시 제품만 통관을 허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KGFC 인증은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박창원 한국식품연구원 본부장은 "글루텐프리 인증은 단순한 성분 검증이 아니라 기업의 품질관리 시스템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라며 "원료 관리, 교차오염 방지, 사후 모니터링 등 종합적인 품질체계를 갖춘 기업만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향후 제품, 프로세스 및 서비스 인증기관의 국제 표준(KS Q ISO/IEC 17065)에 따른 표준 및 인증절차 고도화를 통해 글로벌 표준화를 강화할 계획이다. 협회 관계자는 "KGFC는 건강한 식문화를 확산시키는 산업운동"이라며 "국산 쌀가공식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국민 건강과 수출 산업의 두 축을 함께 성장시키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산 쌀과 과학적 인증에 힘입어 K글루텐프리 산업이 세계화를 향해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했다. 글루텐프리 인증식품은 건강과 맛, 과학과 신뢰를 바탕으로 K-푸드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