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정유화학 기업인 에쓰오일(S-Oil)이 중대재해와 환경 문제에 대한 논란 속에서도 특혜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지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부총리, 장관 등 전직 고위 관료 출신 인사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이사회가 있다는 관측이다. 경제와 산업을 아우르는 규제기관 출신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포진하며 회사의 규제 리스크를 방패막기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온산공장 사망사고로 경영 책임자가 검찰에 송치된 직후인 2023년 3월28일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이 대표적이다. 권 전 장관 외에도 에쓰오일의 사외이사 명단은 화려한 '관료 네트워크' 그 자체다. 이재훈 전 산업자원부·지식경제부 제2차관, 이전환 전 국세청 차장,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 등 모피아(재무부의 영문 Ministry of Finance의 머릿글자와 마피아의 합성어) 인사를 비롯해 경제·산업·세무 등 규제기관 출신들이 이사회에 총집합해 있다.
에쓰오일은 경영진을 견제하고 규제·법적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직 고위 관료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들이 노동·환경 사고가 반복되는 동안 제대로 된 독립적 견제 기능을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사회 안건 찬성률은 2023년, 2024년, 2025년 3분기까지 모두 100%를 기록했다.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 이사회'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에쓰오일을 둘러싼 특혜 의혹이 잇따라 제기돼 왔다는 점에서 사외이사에 전직 고위 관료들을 대거 앉힌 것이 일종의 방패막기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진다.
에쓰오일을 둘러싼 특혜 논란은 과거 중대재해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바 있다. 2022년 5월 울산 온산공장에서 폭발·화재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조사 끝에 당시 경영책임자인 후세인 알 카타니 전 에쓰오일 최고경영자(CEO)와 이민호 전 최고안전책임자(CSO)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2023년 2월 이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울산지검은 약 6개월의 조사 끝에 두 사람 모두에 대해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알 카타니 전 CEO가 안전·보건 관련 권한을 CSO에게 대부분 위임해 실질적 책임이 없었다고 판단했고 이 전 CSO에 대해서는 위험성평가와 안전 매뉴얼 등 필요한 조치가 마련돼 있었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배제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이 아닌 일부 현장 관리자들에게만 책임이 돌아가면서 논란이 일었다.
에쓰오일의 초대형 석유화학 프로젝트인 '샤힌 프로젝트'도 정부 정책과의 상충 지점에서 특혜 논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샤힌 프로젝트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석유화학 업계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구조조정 방향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샤힌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팀 크래커(기초유분 생산 설비) 등 대규모 석유화학 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공사로 2026년 6월 기계적 완공을 목표로 한다. 본격 가동될 경우 에쓰오일의 연간 에틸렌 생산량은 180만톤(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기존 생산량의 약 10배에 달한다.
다른 석유화학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축소 압박을 받는 것과 달리 에쓰오일은 낮은 원가 경쟁력을 무기로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9월 샤힌 프로젝트 현장 방문에서 관련 우려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3일에는 '2025 외국기업의 날'을 맞아 안와르 에이 알-히즈아지 에쓰오일 CEO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약 9조3000억원이 투입된 샤힌 프로젝트와 정유·석유화학 설비 통합 구축이 공적으로 인정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에쓰오일도 석유화학 사업 재편 논의에 참여해 협의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들은 당시 자율협약을 통해 용역 결과를 함께 공유했고 그때 발표된 주요 결과에도 에쓰오일 물량이 모두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에쓰오일의 경우 투자 결정이 이미 3~4년 전에 이뤄진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 물량이 감산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을 부인하며 산업부의 설명과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경 규제 완화에서도 특혜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2023년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30년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대폭 완화했는데 당시 샤힌 프로젝트가 영향을 미쳤을 거란 지적이 제기됐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국회 보고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률을 낮춘 근거로 "바이오 나프타 부족, 수소 혼소 기술 상용화 지연으로 석유화학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이 곤란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샤힌 프로젝트는 고온에서 석유를 열분해하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많이 나온다. 가동될 경우 에쓰오일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2년(971만t)의 두 배가 넘는 최대 20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