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되는 등 수모를 겪었던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올해 주가 상승과 신약 및 해외 진출 성과를 동시에 이끌고 있다.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종식과 함께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되는 등 박 대표가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영향으로 관측된다.
9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한미약품 주가는 이날 오후 1시20분 42만8500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전 거래일 종가(42만1500원) 대비 1.7% 오른 수준이다. 한미그룹 주요 주주의 경영권 분쟁이 지속하던 올해 초(1월2일·종가 27만8500원)와 비교하면 53.9% 상승했다. 최근 1년 동안의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 말 27만원 안팎에서 횡보하던 한미약품 주가는 올해 4월7일 장중 21만4500원으로 저점을 찍은 뒤 등락을 반복하며 상승하고 있다.
주가 상승은 박 대표를 중심으로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된 덕분이라는 평가다. 한미그룹은 지난해 1월 주요 주주가 OCI그룹과의 통합을 주장한 뒤 1년이 넘는 기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통상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 당사자들의 지분 확대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가가 상승하지만 한미그룹의 경우 상속세 부담 영향으로 주요 주주들의 주식 매입 여력이 부족해 되레 주가가 하락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1년 이상 지속된 경영권 분쟁에 따라 본질 가치(영업가치+신약가치) 대비 30~40% 디스카운트(가치 할인)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을 주장한 박 대표는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한미약품 주요 임원인 박명희 국내사업본부장(전무), 최인영 R&D(연구·개발) 센터장(전무), 김나영 신제품개발본부장(전무) 등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공동 입장문을 공개하며 박 대표에 힘을 실어줬다. 박 대표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는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 주요 당사자들이 합의한 후인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완전히 확립됐다.
박 대표는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종식 후 신약 등 R&D 성과 창출에 집중했다. 주가 상승도 R&D 성과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많다. 대표적인 예시가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 최초로 자체 개발한 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신약 성과 임박에 해외도 공략… 외풍에도 '안정적 성과' 평가
한미약품은 연내 에페글레나타이드 품목허가를 신청하고 내년 하반기 출시할 방침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으로 지정한 점을 고려하면 예상보다 상용화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GIFT는 혁신 의약품에 대해 신속 심사를 지원해 시장 출시를 앞당기는 제도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임상 3상 중간 톱라인 결과에서 평균 체중감소율 9.75%를 기록했다. 최대 체중감소율은 30.14%에 달했다.
항암 신약도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한미약품은 최근 미국 면역항암학회에서 차세대 면역조절 항암 혁신 신약 HM16390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파이프라인은 독자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를 적용해 치료 효능과 안전성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단독 투여 및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 병용 투여 관련 글로벌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이 밖에 표적 항암 신약 파이프라인인 ▲HM97662 ▲HM100714 ▲HM100760 HM101207 등도 개발 중이다.
박 대표는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글로벌 진출 속도를 높이는 데에도 주력했다. 그는 지난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CPHI 월드와이드 2025에 참석해 고혈압 복합제 베트남 수출 및 라이선스 계약 성과를 따냈다. 지난 9월에는 호중구감소증 치료 바이오신약 롤론티스 사우디 공급 계약과 당뇨 복합제 멕시코 공급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두 계약은 각각 중동 시장 공략 교두보 마련 및 중남미 성장 시장 공략 확대의 의미를 지닌다.
업계 관계자는 "박 대표는 2023년 한미약품 대표로 취임한 후 경영권 분쟁 등의 외풍에도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며 "안정적 전문경영인 체제 기반의 경영 활동을 통해 제품과 신약, R&D, 수출 등 각 부문에서의 시너지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