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택시장 침체 장기화로 대형 건설업체들이 사업 전략을 재편하는 가운데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전력 수요가 증가하며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건설업체들은 해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16일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SMR 시장은 올해 약 10조4000억원(74억9000만달러)에서 2034년 약 22조3126억원(161억3000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8.9%의 성장이 예상된다.
이에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꾀하는 건설업체들은 SMR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시공능력 1·2위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은 북미·유럽의 SMR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사업 확장에 힘쓰고 있다. 글로벌 SMR 시장 1위 기업으로 평가받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와도 협업중이다. 스페인, 에스토니아 등 유럽에선 글로벌 원자력 기업 GE 버노바 히타치 뉴클리어 에너지(GVH)와 협업하고 동유럽의 루마니아, 폴란드를 중심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대형 원전보다 SMR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다 보니 준비하고 있다"며 "향후 사업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은 원자력 전문기업 홀텍과 '원팀' 전략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홀텍이 SMR 설계를 맡고 현대건설은 시공을 담당하는 구조다. 두 회사는 이달 미국 정부로부터 미시간주 SMR 개발사업과 관련 약 5900억원(4억달러)의 보조금을 확보했다. 착공은 미정인 상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아직 착공 계획은 없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하고 SMR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불확실성이 커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SMR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지속해서 역량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공능력 4위 DL이앤씨는 2023년 미국 SMR 기업 엑스에너지에 약 300억원(2000만달러)을 투자했다. 엑스에너지는 물이 아닌 새로운 냉각재를 적용하는 비경수로형 4세대 SMR 분야를 연구하는 기업이다.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차별화 전략이다. DL이앤씨는 올해 필리핀 최대 전력기업 메랄코와 MOU를 체결하고 현지에서 SMR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기본을 확실히 다지는 기업도 있다. 시공능력 3위 대우건설은 한국수자원공사와 협력해 혁신형 SMR(i-SMR)을 개발중이다. 한전KPS와 SMR 관련 협력 체계도 구성하고 있다. i-SMR은 발전 용량 170MW(메가와트) 규모의 모듈형 원자로로 출력 증감의 유연성을 증대하면서 안정성을 강화한 기술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i-SMR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한수원이 주관하는 SMART Team Korea 협의체를 통해 기술개발사업 참여와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정성·수용성 좋지만 높은 단가·경험 부족 '과제'
SMR은 기존 원전에 비해 설비 규모를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인 차세대 원전이다. 출력은 낮은 편이지만 모듈화 설계로 필요에 따라 증설이 가능하다. 대형 원전보다 입지 조건도 덜 까다로워 전력이 필요한 지역 인근에 건설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특히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각국 정부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며 원전을 다시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안정성과 수용성이 높은 SMR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한계도 존재한다. 신기술인 만큼 기존 대형 원전보다 전력 단가가 높고, 건설 경험이 부족해 상용화가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원전보다 효율성이 높지만 전력 단가가 비싸다"며 "민간 기업에는 수요가 부족해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SMR 시장의 과도기로 보고 사업 확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기술관리연구실장은 "세계적으로 전력 수요와 원전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고성장 뒤에 진입은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대형 건설업체들이 선제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상용화까지 장벽은 있지만 SMR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