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국회 청문회를 두고 '맹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증인의 불참과 외국인 임원의 형식적인 답변, 여야의 정쟁이 겹치면서 소모적인 시간 낭비만 했다는 지적이다. 책임 있는 사과도, 실효성 있는 대책도 내놓지 않은 쿠팡의 태도에 "대한민국 국회를 우롱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관련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는 시작 전부터 '김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김범석 쿠팡 Inc 의장과 전직 대표 등 핵심 관계자들이 줄줄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쿠팡이 매출 90%를 대한민국에서 올리는데 (김 의장이) 청문회에 안 온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민과 이용자들이 호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야당 간사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김 의장이 글로벌 CEO(최고경영자)라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며 "모국어로 당당하게 과오를 설명할 수 있음에도 외국인을 앞세워 회피하는 태도는 비겁하다"고 꼬집었다.
"인사말 빼라"… 원론적 답변·동문서답 '빈축'
핵심 증인이 빠진 자리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와 브랫 메티스 쿠팡 최고정보보안책임자(CISO) 등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임원들이 채웠다. 질문과 답변이 오갈 때마다 통역 과정을 거치느라 시간은 지체됐고 청문회의 흐름은 수시로 끊겼다. 증인 양측에 앉은 통역사들은 의원들의 질문과 이들의 대답을 쉴새없이 전달했다.
외국인 임원들은 원론적인 수준에 그친 답변이나 요지를 벗어난 동문서답으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김 의장의 불출석 사유를 묻자 로저스 대표는 "답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쿠팡의 한국 대표이사로서 어떤 질문이든 성심껏 답하겠다"며 형식적인 인사말을 전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답변에서 의례적인 내용은 생략해 달라"며 속기록에서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로저스 대표는 김 의장과의 소통 여부를 묻는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내가 책임자로서 모든 질문에 답하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답변 도중 "통역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시간을 끄는듯한 모습을 보여 질타를 받기도 했다.
사고 당시 대표이사였던 박대준 전 대표가 사임 후 자취를 감춘 것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민병기 부사장에게 박 전 대표의 소재를 물었으나 민 부사장은 "최근 며칠 동안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위원회 차원에서 행정실 관계자를 급파해 소재 파악에 나서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대관 로비' 정쟁 더해져 '빈손' 전락… "국회 우롱하나"
여기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박 전 대표의 오찬 의혹과 관련된 질의가 나오면서 청문회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야당은 쿠팡이 국회를 대하는 태도를 알기 위해 파악해야 한다며 관련 질의를 이어갔고, 여당에서는 청문회를 정쟁으로 몰지 말자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청문회 취지와 동떨어진 여야 의원들의 소모적인 설전만 반복됐다.
이날 청문회는 3370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대형 사고에도 쿠팡 측의 책임 있는 사과와 피해자 보상안, 재발방지 대책 등 아무런 성과가 남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한국 국회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는 쓴소리까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어 한마디 못하는 임원을 앉혀놓고 '영어듣기평가'를 하듯이 시간만 보내고, 질문의 요지와 관계없는 답변을 내놓는 것은 국회를 우롱하는 것"이라며 "쿠팡이 한국 시장을 존중했다면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