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이 오는 22일 결정될 전망이다. 2년 넘게 표류해온 대형 국책사업인 만큼 이번 결정이 향후 사업 정상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방위사업청은 이날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를 열고 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을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지난 4일 방위사업기획관리 분과위원회를 열고 수의계약·경쟁입찰·공동개발 등 방안을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방추위는 당초 18일로 예정됐으나 국방부·방사청의 업무보고 일정과 겹치면서 22일로 연기됐다.
방사청 내부와 업계에서는 이번에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번 방추위에서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11월) 방위사업청장이 교체되며 조직 쇄신 부담이 커진 데다 대통령이 KDDX 논란을 직접 언급한 점도 결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톤급 미니 이지스 구축함 6척을 실전 배치하는 것이 목표다. 개념설계는 2012년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수행했다. 기본설계가 2023년 12월 완료됐지만 다음 단계인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업체 선정은 양사 간 갈등과 분과위 내 이견으로 약 2년동안 지연됐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이어가는 것이 관례이자 기술 연속성 측면에서 합리적이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한화오션은 기술 유출 사건 등 기존 관례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특별한 상황인만큼 경쟁입찰이나 공동설계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양사가 공동으로 상세설계를 수행하고 선도함을 분담 건조하면 지연된 일정을 일부 만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공동설계 방식이 해법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신중론도 나온다. 김호성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은 "병렬로 건조하면 단기적으로 일정은 앞당길 수 있지만 경쟁이 사라져 가격 협상력이 약해진다"며 "결국 예산과 전력화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쪽은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의계약을 둘러싼 논의는 대통령의 충남 타운홀 미팅 발언 이후 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군사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계약을 주느니 마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고 있던데 잘 체크하라"고 했다. 이를 두고 수의계약 방식이 사실상 제외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남은 선택지는 경쟁입찰 또는 공동설계 방식이다. 하지만 공동설계 방식은 공정거래법상 '담합' 소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방사청은 지난 8일 공동설계안이 담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공정위 판단 결과에 따라 방추위 결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졌다.
이번 결정이 향후 방위사업 전반의 기준을 남길 수 있다는 점도 방사청으로서는 부담이다. 김 회장은 "업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물량을 나눠주는 방식이 굳어지면 향후 다른 함정 사업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며 "이번 결정은 단순한 사업 하나가 아니라 향후 방위사업의 기준을 남기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표류가 2년 이상 장기화되면서 해군 전력화 공백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북한은 올해 4월 '최현호', 6월 '강건호' 등 신형 구축함을 잇달아 진수하며 해상 전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주변국 해군 전력이 빠르게 증강되는 상황에서 KDDX 지연은 단순한 사업 지연을 넘어 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