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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캡처=일간베스트저장소 홈페이지 |
지난 23일 청와대가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 “폐쇄 여부를 놓고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이날 청와대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을 통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웹사이트 전체 게시물 중 불법정보가 70%에 달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심의를 거쳐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접속을 차단한다”며 “일베의 불법정보 게시글 비중이 사이트 폐쇄 기준에 이르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해당사이트 제작의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사이트 폐쇄가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다. 일베 폐쇄를 주장하는 측은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공익적인 측면을 따졌을 때 일베를 폐쇄하면서 얻는 효용이 더 크다”며 찬성했다. 반면 일베 폐쇄에 반대하는 이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막겠다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일베, 왜 문제가 됐나
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파생돼 출범한 일베는 온라인 유머 커뮤니티에서 시작했다. 2000년대 말 진보진영에 반감을 가진 젊은 네티즌들이 일베로 모여들었다. 당시 인터넷포털 다음 ‘아고라’의 정치색에 반대 성향을 가진 이들이 광우병 촛불집회, 천안함·연평도 포격사건을 거치며 일베에서 결집했다. 그들은 진보진영이 최대 성과로 꼽는 ‘민주화’를 조롱했다. 시간이 지나며 조롱은 혐오로 강화됐고 그 대상도 약자와 소수자로 확대, 노골적인 극우성향 커뮤니티가 됐다.
이후 일베는 노무현 전 대통령 모욕, 선화예고 성폭행 계획, 세월호 관련 루머 및 광화문 폭식집회, 지역감정 조장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또 2013년 9월에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면을 손자가 사진으로 촬영, 인증하는 이른바 할아버지 자살 인증샷이 올라오는 등 반인륜적인 행동도 수없이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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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 단식농성에 맞서 일베 회원들이 폭식투쟁을 벌이는 모습. /사진=뉴시스 |
청와대에 따르면 일베는 지난 5년간 차별이나 비하 내용으로 문제가 돼 심의 후 삭제 조치가 이뤄진 게시물이 가장 많은 커뮤니티로 2013년 이후 2016년 한차례를 제외하고 줄곧 1위 제재 대상으로 군림했다.
과거에도 일베 폐쇄 관련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일베의 전성기라 일컬어지는 2013년 신경민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은 “표현의 자유도 최소한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며 일베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에 조국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합헌적인 제한은 가능하다”면서도 “악성 게시물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원의 경고가 선행돼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최근에는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일베 사이트를 폐쇄해 달라’는 글이 올라오며 잠잠하던 일베 폐쇄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약 한달만에 23만여명이 서명한 이 청원에 청와대가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나선 것. 그렇다면 일베 폐쇄는 가능한 일일까.
◆현행법상 일베 폐쇄 가능
전문가들은 ‘예외적인 경우’ 얼마든지 정부가 홈페이지를 폐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소라넷과 한총련 홈페이지 폐쇄에서 알 수 있듯 현행법도 이를 허용한다.
정보통신망법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음란한 내용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청소년유해매체물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 ▲범죄 목적 또는 교사·방조 행위 등의 내용을 ‘불법 정보’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유통을 엄히 금지한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런 ‘불법정보’를 유통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별도 심의를 거치게 하거나 관련 중앙행정기관의 요청에 따라 그 취급을 거부·정지·제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7 제2항, 제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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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베 폐쇄 반대 의사를 보였다. /사진=뉴시스 |
일각에서는 불법정보의 삭제를 넘어 사이트 폐쇄에 나서는 것은 지나치다고 반론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베 폐쇄를 요구하는 청원에 청와대가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한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폐쇄를 추진하겠다는 말”이라며 “일베 폐쇄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것이다”고 말하며 반대 의사를 보였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사이트 폐쇄는 국민 기본권의 과도한 침해라고 볼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사이트 폐쇄를 제외하고는 달리 적절한 대처방법을 생각하기 어렵다”며 “사이트를 폐쇄해도 다른 통신망을 이용해 정보를 게시할 수 있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의지 따라 폐쇄·존치 갈리지만…
하지만 현행법과 달리 일베 폐쇄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베의 불법정보가 일정수준이 돼야 사이트 폐쇄를 명령할 수 있지만 이 불법정보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방심위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좌우된다. 결과적으로 방심위가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 지가 관건인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일베 폐쇄를 두고 “공권력은 불법적인 정보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다”면서도 “혐오발언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제가 뚜렷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베 안에는 명예훼손 등 불법정보들이 분명 있긴 하지만 그게 70%를 넘진 않았다”며 “따라서 방심위에서 심의해도 일베 폐쇄를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