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송파자원순환공원에서 쓰레기선별업체 근로자가 재활용쓰레기 선별장에 쌓인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이동해 기자
서울 송파구 송파자원순환공원에서 쓰레기선별업체 근로자가 재활용쓰레기 선별장에 쌓인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이동해 기자

언택트의 역습, 플라스틱 대란 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가 폐플라스틱 처리 문제로 번지고 있다. 개인 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언택트(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생필품과 식료품 등의 포장·배달이 늘면서 일회용 보관통·포장비닐 등 플라스틱 폐기물까지 덩달아 급증하고 있어서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18년 발생했던 ‘플라스틱 대란’이 또다시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폐플라스틱 적체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증가하는 폐플라스틱 쓰레기… 사용량 日·佛의 2배

환경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하루 평균 848톤으로 전년 동기(733.7톤) 대비 15.6%나 급증했다. 1분기 끝무렵인 3월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정부의 비대면 생활 권고가 본격화된 이후 배달음식 주문량이 급증한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월 평균 1조6730억원으로 2018년 여름(4969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한국은 플라스틱 소비량이 많은 국가였다. 경기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플라스틱 관리 정책의 한계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2017년 기준 132.7㎏으로 ▲미국 93.8㎏ ▲일본 65.8㎏ ▲프랑스 65.0㎏ 등을 크게 웃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플라스틱 소비량 중 25~40%는 포장용도로 사용되며 사용 직후 폐기물로 처리된다.

폐플라스틱은 주로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된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플라스틱 대한민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바다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의 82%는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이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그래픽=김은옥 기자
한국은 2017년까지 주로 중국에 폐플라스틱을 수출했다. 하지만 중국이 자국 내 환경오염을 이유로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거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처리할 곳이 없는 폐플라스틱을 국내에 쌓아두면서 전국 곳곳에서 ‘쓰레기 산’이 생겨난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폐플라스틱을 수출하려 했지만 해당 국가도 처치곤란을 이유로 수입을 거부하면서 처리 방법이 요원해졌다. 특히 적체되는 플라스틱이 늘면서 폐플라스틱 가격이 하락해 수거업체가 수거를 거부하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결국 정부는 2018년 4월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2030년까지 50% 감축하고 재활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플라스틱 관리 및 규제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유통·소비 단계에서 2022년까지 1회용 컵과 비닐봉투 사용량을 35% 줄이기 위해 커피숍 등 매장 내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 같은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바이러스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회용 용기보다는 한번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플라스틱 용기 제공을 다시 허용한 것이다.

◆전국 지자체 96% 일회용품 사용 전면 허용… 강력한 규제 필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전면 허용한 지자체는 219곳으로 전체의 95.6%에 달한다. 일회용품 사용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지자체는 10곳에 불과했다. 폐플라스틱 발생량이 더 증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폐플라스틱 가격도 지속적으로 감소세에 있다는 점이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폐플라스틱은 세척 후 파쇄 상태인 플레이크(PE) 기준 지난 3월 전국평균 1㎏당 545원에서 10월 464원으로 15%가량 떨어졌다. 단가가 하락할수록 수거업체 입장에선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 2018년 플라스틱 대란 당시처럼 수거를 거부하는 사태가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내 일부 아파트에서는 플라스틱 대란을 우려해 주민들에게 폐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을 최소화하고 폐비닐류는 종량제 봉투에 따로 담아서 버려줄 것으로 권고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에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사진=이한듬 기자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에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경고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사진=이한듬 기자
플라스틱 대란을 막기 위해선 보다 강력한 규제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플라스틱 제품에 대해 생산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원칙을 세워 생산-소비-수거-처리 전과정에 걸쳐 환경 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식품 및 음료 용기·포장지·플라스틱 봉투 등도 생산자가 폐기와 재활용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김이서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시장에 일회용과 다회용 플라스틱을 내놓는 모든 기업을 관리해 애초부터 쓰레기가 덜 나오고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제품 포장재를 고안하고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사업 모델을 도입하도록 정부가 독려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론 생산-소비 전 과정에 대한 규제를 도입해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수진 의원은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기업의 자발적 규제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쓰레기 감축에는 한계가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율적 협약에 의한 단계적 정책이 아닌 지금 당장 적극적인 일회용 쓰레기 감축을 위한 규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달 시 다회용기 사용 정보를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제공하고 일회용 용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다회용기 사용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해 코로나19 배달 플라스틱 쓰레기 감축을 위한 ‘플라스틱 긴급 방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한듬 기자 [email protected]



/ 그래픽=김은옥 기자
/ 그래픽=김은옥 기자

애물단지 플라스틱의 ‘판타스틱’ 변신

# ‘20세기 기적의 소재’. 한때 플라스틱은 이렇게 불렸다. ‘생각한 그대로 만들다’라는 뜻 그대로 어떤 모양이든지 손쉽게 변신이 가능하다. 쇠처럼 녹슬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다. 가볍고 튼튼할 뿐 아니라 색이나 무늬도 자유자재로 넣을 수 있다. 이런 천사의 능력을 지니고도 가격까지 저렴하다. 플라스틱은 이런 장점을 앞세워 지난 150년간 인간의 일상과 일생을 점령해왔다. 플라스틱 포장재가 쓰이지 않는 제품은 이제 걸러내기 힘들 정도다.
# 북태평양에는 ‘쓰레기섬’이 있다. 이곳의 쓰레기 면적은 155만㎢로 그 양은 자그만치 7만9000톤에 달한다. 한반도 면적 7배에 달하는 이곳은 바다 위로 떠내려온 온갖 쓰레기가 모여들어 만들어졌다. 1조9000억개의 쓰레기 조각이 떠다니는 이곳의 99%를 차지하는 주범은 플라스틱. 지금도 계속해서 쓰레기섬의 크기를 키우고 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플라스틱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굳이 쓰레기섬을 언급하지 않아도 플라스틱은 지난 수십년 간 환경파괴 주범으로 인식돼왔다. 그래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썩는 플라스틱’. 땅속에서 낙엽처럼 완전히 썩어버리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화학 업계는 이 시장을 미래성장동력으로 보고 소재 개발에 한창이다.

◆2025년 10조 시장 열린다… 소재 경쟁 치열

업계가 ‘썩는 소재’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퇴출 기조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이 경우 자연스레 생분해성 소재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다. 시장에선 지난해 4조2000억원에 머물렀던 생분해성 소재시장이 연평균 약 15% 성장을 거듭하며 2025년 9조7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장을 잡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LG화학·SKC·롯데케미칼 등이다. 이 업체들은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재활용 역시 어려운 플라스틱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인 곳은 LG화학. 유연성(신율·늘어나는 정도)과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생분해성 신소재를 자체 개발해냈다. 이 신소재는 옥수수 성분의 포도당과 폐글리세롤(바이오 디젤의 생산 공정 중 발생한 부산물)을 활용한 바이오 함량 100%의 생분해성 소재. 120일 이내에 90% 이상 생분해된다. 단일 소재로는 PP(폴리프로필렌) 등의 합성수지와 동등한 전세계 유일 소재다.

기존 생분해성 소재는 유연성 강화를 위해 다른 플라스틱 소재나 첨가제를 섞어야 했다. 이로 인해 공급 업체별로 물성과 가격이 달라지는 한계가 있었다. LG화학이 이번에 개발해낸 소재는 단일 소재로 품질과 용도별 물성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소재를 상용화하면 비닐봉지·일회용컵·마스크 부직포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LG화학은 2022년 고객사 대상 시제품 평가 등 진행한 뒤 2025년 본격적인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부른 나비효과… 폐플라스틱 쓰나미 온다
◆스타벅스 포장재부터… 음료, 샴푸 등 생활 전반에

LG화학과 함께 SKC 역시 생분해성 소재 개발에 적극적이다. SKC는 2009년 세계 최초로 생분해 PLA 필름을 상용화했다. 옥수수 추출 성분으로 땅에 묻으면 단기간에 생분해되고 유해성분이 남지 않는다. 투명성과 강도가 뛰어나고 인쇄하기도 좋아 활용 범위가 넓다. 과자나 빵 등 신선식품 포장재 외에도 종이쇼핑백·종이상자·음료병 라벨·코팅지에도 쓰인다.

SKC의 생분해 PLA 필름은 2018년 10월부터 스타벅스코리아의 바나나 포장재로 공급되기 시작했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케이크 보호비닐과 머핀·샌드위치의 포장재 등으로 공급품목이 확대됐다. 현재 국내 편의점 체인과도 식품 포장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한 대형마트에는 채소 제품의 포장재로 공급되고 있다.

해외 진출도 앞두고 있다. SKC는 일본 편의점 체인과 주먹밥 포장재로 생분해 PLA 필름 평가를 진행 중이고 동남아 항공사와는 기내식용 나이프세트 비닐 포장재에 적용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LG화학과 SKC가 옥수수라면 롯데케미칼은 사탕수수다. 롯데케미칼은 사탕수수 등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로 바이오 페트(PET)를 개발해 2012년부터 생산 중이다. 바이오 페트는 기존 석유계 페트 공정 대비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약 20% 줄여 제품 생산이 가능하고 100% 재사용 및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최근 환경보호와 관련된 ‘착한 소비’와 ‘효율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2018년 대비 2019년 바이오 페트 판매량이 약 6배 가량 증가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플라스틱에 비해 원료 자체는 비싸지만 소비자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고객사 역시 친환경 용기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제조 원가가 다소 올라가더라도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 미래기술연구센터 연구원들이 신규 개발한 생분해성 신소재의 물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 사진=김설아 기자
LG화학 미래기술연구센터 연구원들이 신규 개발한 생분해성 신소재의 물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 사진=김설아 기자
◆특정 온도에서만 썩어… “단계적 도입해야”

업계에선 플라스틱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플라스틱 사업이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유럽바이오플라스틱협회에 따르면 전세계 바이오 플라스틱 생산규모는 2017년 88만톤에서 2022년 135만4000톤으로 약 54% 성장할 전망이다.

다만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이 확대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분해되기 위해선 특정 온도와 습도 등 까다로운 자연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정한 환경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을 경우 일반 플라스틱처럼 썩지 않고 땅이나 바다에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유엔환경계획(UNEP) 역시 2015년 11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이 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UNEP는 “생분해 플라스틱 이용이 늘어도 환경오염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며 “생분해 플라스틱은 기온이 50℃가 넘어야 분해되는데 자연환경에서는 기온 50℃를 넘는 상황이 매우 드물다”고 언급했다.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과정 역시 친환경이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생분해 플라스틱의 소재로 사용되는 옥수수와 사탕수수 등 농작물을 키울 때 사용하는 농업 원료가 오히려 환경오염을 유발해 선순환 효과를 무색하게 한다는 것이다.

재활용업계 한 관계자는 “친환경 소재라는 큰 틀의 방향성은 맞지만 생분해 플라스틱이 상용화되는 과정에는 여러 문제가 수반된다”며 “현재는 생분해 플라스틱이더라도 일반 플라스틱처럼 재활용할 수도 그렇다고 매립해 처리할 수도 없는 실정이어서 단계적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설아 기자 [email protected]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원 연구원이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솔벤트 품질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원 연구원이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솔벤트 품질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버려진 플라스틱서 금맥 캔다… 재활용 나선 기업들

석유화학업계가 에코 비즈니스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환경규제 강화와 지속가능 경영 측면에서 재활용 기술 없이는 더 이상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만들어낸 변화다.
◆기업 뛰게 하는 ‘ESG’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제조업 중 생산 5위(6.1%)와 수출 4위(8.3%)를 차지하는 주력산업으로 세계시장에서도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 4위(926만톤)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생산의 55%를 수출에 의존하는 산업구조 탓에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수요성장 둔화와 함께 세계 1·2위 미국과 중국의 대규모 생산시설 증설로 인한 공급 증가 등으로 본업을 넘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요구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 ‘E’에 해당하는 환경에 주목한다. 비재무적인 환경 관련 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내면 사회적 가치 향상은 물론 투자자의 이목을 끌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주요 글로벌 고객사는 기업의 환경적 가치와 이에 따른 지배구조를 파악한 후 투자를 추진한다는 후문이다. 오히려 고객사가 친환경 경영·동반성장 등을 요구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과도 경쟁이 더욱 어려워지며 환경·지배구조 등에서 차별화를 두려 하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사업 개발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업계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기업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하려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최근 석유화학업계의 실험실 연구원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의 연구 대상은 지금까지 무심코 버렸던 폐플라스틱이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재의 재활용 비중을 100%로 설정했고 일본도 60%를 목표로 잡는 등 세계 각국에서 재활용 기술 관련 요구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코로나19가 부른 나비효과… 폐플라스틱 쓰나미 온다

◆진화하는 재활용 기술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 위해선 여러 소재가 혼합된 상태로 버려지는 만큼 분쇄할 때 최대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를 높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 과정에서 경쟁력을 찾았다. 우선 폐플라스틱에서 뽑아낸 열분해유의 불순물을 대폭 줄여 솔벤트와 윤활기유 등 화학 시제품을 만들었다.

솔벤트는 세정제·페인트 희석제·화학공정 용매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화학 제품이다. 윤활기유는 엔진오일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 윤활유를 만드는 주원료이자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재료다. SK이노베이션은 재활용 기술 확보의 청신호로 보고 수율과 제조 공정 등을 재조정해 제품 상용화 시기와 사업 모델을 결정할 계획이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올해부터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미래 성장전략으로 ‘그린밸런스2030’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린밸런스2030은 환경 긍정 영향을 창출하는 그린 비즈니스를 육성해 2030년까지 환경 부정 영향을 ‘0’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이다.

자회사인 SK종합화학도 힘을 보태고 있다. SK종합화학은 재활용 업체와 정부를 대상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펼쳐 현재 20%인 친환경 제품 비중을 2025년까지 70%로 확대할 목표를 세웠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기존 탄소 비즈니스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친환경 제품을 포트폴리오에 넣고 관련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김교현 화학BU장(왼쪽) 이 네프론 기계에 플라스틱페트병을 넣고 있다. / 사진제공=롯데케미칼
롯데그룹 김교현 화학BU장(왼쪽) 이 네프론 기계에 플라스틱페트병을 넣고 있다. / 사진제공=롯데케미칼

◆폐플라스틱 수거 생태계 확보돼야
시중에 유통되는 신발·가방·옷도 석유화학업계를 거친다. 효성그룹 화학섬유 계열사 효성티앤씨는 제주도에서 버려지는 페트병을 수거해 가방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수거된 투명 페트병을 잘게 조각낸 후 원사로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리사이클 섬유가 ‘리젠제주’다. 친환경 가방 제조 스타트업인 ‘플리츠마마’는 이 섬유로 가방을 제작한다.

효성티앤씨에 따르면 가로×세로 길이 10㎝×18㎝의 가방 1개를 만들려면 500밀리리터(㎖) 페트병 16개가 필요하다. 페트병에서 추출한 원사는 네덜란드 글로벌 친환경 인증기관인 ‘컨트롤유니온’의 안전성 검증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원단 제조사에 넘길 수 있다. 대부분의 화학석유기업도 이 기관을 통한다.

롯데케미칼도 적극적이다. 폐페트병 회수 장비인 ‘네프론’을 롯데월드몰과 롯데월드에 설치해 페트병을 수거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재생 폴리에스터(rPET)를 롯데그룹 계열사와 글로벌 기업에 공급해 의류나 신발 소재에 쓰이게 할 예정이다.

‘프리사이클’(precycle) 움직임도 눈에 띈다. 프리사이클은 재활용 이전에 폐기물 자체를 만들지 말자는 개념이다. 롯데케미칼은 여수 2공장 바이오 에틸렌글리콜(Bio-MEG) 탱크에서 바이오 페트(Bio-PET)를 생산하고 있다. Bio-PET는 사탕수수를 원료로 삼아 PET의 주요 원료인 에틸렌글리콜(MEG)을 만드는 생수병으로 100% 재사용 및 재활용 가능하다.

기존 석유계 PET공정 대비 이산화탄소(CO₂)를 약 20% 저감해 제품을 생산한다. Bio-PET 생산량이 연간 8000톤이면 기존 PET 공정 대비 CO₂를 약 3800톤 낮추는 셈이다. 이는 1만1000가구가 한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CO₂양과 같다.

업계는 원료가 되는 폐플라스틱 수거와 처리 생태계가 확보돼야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봤다. 한 석유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선 깨끗한 플라스틱 수거가 안 돼 품질이 좋지 않아 일본 등에서 폐페트병을 수입하고 있다”며 “폐플라스틱 수거 인프라 구축과 정부의 재활용 정책 및 석유화학기업과 재활용 관련 중소기업 간의 협력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가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