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 시절인 1923년에 발생한 7.9~8.4 규모의 간토대지진에서는 14만2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불을 사용해 점심을 준비하던 시간에 지진이 발생했고 목조주택이 대부분이던 시절이라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테러를 준비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조선인 6000여명이 무차별 학살 당해 가슴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1933년에 발생한 규모 8.4의 쇼와산리쿠지진에서는 3000명 이상이 죽었다.
1995년에 발생한 규모 7.2인 고베대지진에서는 사망자수가 6434명에 달했다. 항만이 파괴돼 복구에만 2년이 걸렸고 지진피해액이 10조엔을 육박해 일본 연간 GDP의 2%에 달하는 피해가 났다. 이번 대지진에서는 태평양 전역에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고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로 방사능 유출의 공포감까지 더해지면서 다른 국가로의 파장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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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지진보다 더 위험하다
대규모로 사망자를 발생시킨 이번 대지진으로 인해 지진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부닥치게 되는 여러 위험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 활동과 관련해 예상되는 위해도가 아래 표에 나와 있다(환경공학개론, 정명규 외). 인간이 어떤 활동을 할 때의 연간 사망확률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표에 나와 있는 ‘활동’ 중에서는 흡연이 가장 위해도가 높다. 담배를 하루에 한갑씩 피는 사람이 오토바이 운전을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안 한다면 모순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며 출퇴근하는 사람이 자전거가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기피한다면 모순이다.
비행기는 타고 갈 때 사망 확률이 매우 낮아서 모든 운송수단 중에서 가장 안전한 편이다. 그럼에도 비행기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일단 사고 발생 시에는 대형 참사로 이어지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번의 사고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가 위험의 척도가 아니라 사고 시 사람이 죽는 수자를 사고의 확률에 곱해서 판단해야 한다. 비행기는 자동차와 달리 3차원 공간인 하늘로 가 충돌사고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상 이변으로 사고 나는 경우도 거의 없다.
2009년 항공기 사고 수를 보면 항공기 140만대당 한대 꼴로 사고가 발생했다. 항공 사고율이 조사된 이후 2006년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확률이며,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다. IATA(국제항공운송협회)의 2009년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총 3500만 항공편에 23억명이 탑승했고 총 18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중 685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확률로는 685/23억, 즉 0.00000297%에 불과하다.
투자에서도 위험이 현실화될 확률이 낮더라도 일단 현실화됐을 때 손실이 상당히 크다면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ELS 상품 중 기초자산의 최초 기준가격과 대비해 일정 수준, 예를 들어 50% 이하로 한번도 떨어지지 않는다면 시중 금리의 몇배 되는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이 있다. 총괄적인 기대수익은 높아도 일단 손실 발생 시 큰 손실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전의 사고에 사로잡히면 기회를 놓친다
무작위로 일어나는 미래의 사건은 바로 앞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던질 때 바로 앞에서 3이 나왔다고 그 다음에도 3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3이 연속적으로 5번이 나왔어도 그 다음에 3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6분의 1이다. 그럼에도 위험에 대해서는 심리적으로 바로 앞 사건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대구 지하철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지하철 타는 것을 잠시 꺼려했던 적이 있다. 사고가 났기 때문에 오히려 지하철 운행 및 감시를 강화해 사고의 확률은 더 낮아지지만 심리는 거꾸로 작용하는 것이다.
공교롭게 주식형펀드를 하락 시기에 처음 가입해 손실을 경험하면 주식형 투자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성과보다는 당장 눈앞에 나타난 결과에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다. ELS도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직전까지만 해도, 높은 수익률로 조기 상환되는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절정에서 전 세계 주식시장이 대폭락하면서 거의 모든 기초자산이 손실 기준이 되는 하한선을 일시적으로 깨고 말았다.
ELS 만기상환 시 손실을 보게 된 상당수 투자자들은 그 뒤로는 ELS는 위험하다고 인식하며 기피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출시된 ELS 거의 대부분이 높은 연 환산 수익률로 조기 상환됐다. 바로 직전의 경험에 심리가 지배돼 그 뒤에 나타나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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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보다 교통사고와 자살 사망자가 더 많다
대규모 지진에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지만 그러한 규모의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지난 수십년간 일본에서 지진으로 사망한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훨씬 많다. 일본에서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009년에 4914명, 2010년에 4863명이었다.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1952년까지는 3000∼4000명대를 유지하다가 자동차 보급이 증가하면서 크게 늘어나서 1959년에 1만명을 넘어섰으며 1970년에는 1만6765명에 달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줄어들기 시작해 2009년에는 57년 만에 4000명대로 떨어졌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규모 지진이 해마다 일어났을 때의 결과만큼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높은 국가인 일본에서도 지진보다는 교통사고가 훨씬 더 두려운 사건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09년에 교통사고가 23만여건 발생해 5838명이 죽고 36만여명이 다쳤다. 일본보다 인구가 훨씬 더 적은 한국에서 일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교통사고로 죽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규모 지진 발생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교통사고보다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 일본에서는 하루에 94명이 자살해 연간 자살 사망자 수가 3만여명에 이른다. 자살을 사회적으로 줄여가는 노력이 지진에 대비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2009년에 자살에 의한 사망자는 모두 1만5413명으로 2008년보다 19.9%, 2555명 늘어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다.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자수가 30명으로 일본의 26명보다 많다. 하루 평균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2명은 술과 관련된 원인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위험이 현실화됐을 때, 한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규모 피해가 생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움을 많이 가지는 경향이 있고, 매일 매일 꾸준히 피해가 생기면서 총체적으로는 훨씬 더 위험한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것은 보편적인 심리상 오류다. 살아가면서 어차피 위험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기에 위험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에서도 위험은 언제나 수반되므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느냐 여부가 장기적인 성과를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