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축소로 기업경영이 어려운데 설상가상 대출원리금까지 더 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높은 금리도 부담이다. 기준금리 연 2%의 초저금리시대를 맞았지만 이 역시 B사장에겐 남의 얘기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떨어져 A기업의 대출이자는 연 7~8%대에 달한다.
#2. 충남 서천에서 프로폴리스 원료 생산업을 하는 C기업 D사장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C사는 지난해 말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다. 문제는 이를 생산하려면 수억원의 자금을 들여 생산설비공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용평가사가 재무제표 위주로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고 은행권도 실적 위주로 대출금액을 산정하다 보니 신규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
대출을 받으려면 올해 매출을 지난해의 두배가량 더 올려야 한다. 최소한 올해는 신규투자가 어렵게 됐다. D사장은 “매스컴에서 은행권이 문턱을 낮추고 정부의 지원도 늘었다고 하는데 중소기업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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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의 허리로 불리는 중소기업이 자금난에 휘청이고 있다. 현 정부가 금융권의 대출문턱을 낮추는 등 기업의 ‘손톱 밑 가시’를 빼겠다고 밝혔지만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가시보다 큰 바늘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형국이다.
◆중소기업 고충 1위 ‘자금난’ 어떻길래
중소기업 CEO에게 고충을 물어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답변이 자금난이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하루이틀만에 생긴 것도 아닌데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시장에서 요구한 신제품 개발·생산이 필수다.능력있는 인재를 계속 충원해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고 부지 등을 매입해 생산설비도 확장해야 한다.
시장이 요구하는 니즈를 따라가기 위해 투자는 불가피하다. 그런데 현실은 투자자금을 끌어 모으는 게 쉽지 않다. 자금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발전이 더디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 걸음만 하는 기업이 늘었다.
물론 기술력과 사업자의 경영능력에 따라 기업의 흥망성쇠가 갈릴 수 있다. 문제는 수십여년간 외길을 걸어온 기업조차 매번 자금난에 허덕인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중소기업 자금사정 지수를 보면 지난 2010년 88.9에서 2013년 80.1로 크게 떨어졌다. 이 지수는 국내 중소기업의 분기별 자금흐름을 수치화한 것으로 100을 넘으면 전기에 비해 자금사정이 호전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이 많음을 의미하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서 20여년간 플라스틱 원료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나정식 사장(54·가명)은 “월말 혹은 연말이 되면 친인척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어음과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고 나면 직원에게 줘야 할 월급이 모자란다. 일시적인 자금부족 때문에 친인척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화를 거는 이유를 알아서인지 바쁜 척하며 (나를) 피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자금난을 극복하는 일은 지금의 회사를 처분하는 일뿐이다. 그런데 이 역시 빚을 모두 갚고 나면 내 손에 떨어지는 게 얼마 없다. 처분하기도, 그렇다고 계속 운영하기도 애매한 악순환의 연속"이라며 답답해 했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꼽히지만 중소기업 CEO들은 은행의 대출심사 평가에 가장 큰 불만을 쏟아낸다.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지원할 때 적용하는 대출심사는 크게 세가지다. 기업의 매출과 담보(부지·재산 등), 기업의 신용평가다. 매출이 매년 오르거나 현 상태를 유지하면 다행이지만 하락할 경우 축소된 금액만큼 대출원리금을 추가로 더 갚아야 한다.
예컨대 연 매출 100억원을 기록한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3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매년 매출을 유지하거나 상회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시적 현상으로 매출이 80억원대로 떨어질 경우 하락한 20억원 만큼 대출원리금을 일시적으로 더 납부해야 한다.
A사가 올해 원리금 상환액이 10%에서 20%로 늘어난 이유도 매출이 줄어든 탓이다. 매출이 줄어들면 설상가상 기업의 신용등급도 하락할 수 있다. 기업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원리금 상환규모는 더 늘어난다. 비올 때 우산을 뺏는 격이다.
단기 위주의 대출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중장기적인 자금지원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경영을 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의 부실을 염려한 금융권은 대출만기를 점점 축소하는 추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1년 이하 단기대출 비중은 전체 자금 조달경로의 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연체율도 계속 늘어나는 구조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14%로 전년 말에 비해 0.26%포인트 상승했다.
상공회의소는 보고서를 통해 “은행권의 대출의존도가 높고 단기 위주 대출이 많은 점 등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꼬집었다.
◆기술금융 ‘쏠림’… 시스템 개선 시급
물론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을 압박하고 다양한 세금제도를 통해 중소기업을 돕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술금융. 기술금융은 기업의 재무상태보다 보유한 기술을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업이 우수한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면 적극 투자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과거에 비해 한단계 시스템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작용에 시달린다. 은행들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우량기업에만 자금이 집중 지원되는 쏠림현상이 나타난 것.
고수진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 과장은 “기술금융이 도입되면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일시적으로 해소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며 “다만 이 역시 우량 중소기업에 자금이 집중되는 쏠림현상으로 변질됐다. 소기업에도 정책자금이 지원되도록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제도는 정부와 은행의 대출심사체계다. 중소기업을 대중소로 분류해 공평하게 자금이 지원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