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20분(중국 현지시간).

전세계 금융시장은 숨죽이고 이 시간을 기다린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고시환율을 보기 위해서다. 낮은 변동성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트레이더들도 역내외에서 거래되는 위안화 환율을 실시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예측할 수 없는 위안화 변동성에 금융시장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중국정부는 최근 3일 연속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지난 8월11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기준환율을 1.9% 인상 고시했다. 이에 위안화 가치는 전날보다 1.82% 평가절하됐다. 중국정부는 다음날에도 위안화 기준환율을 1.62% 올린 데 이어 13일에는 1.11%를 추가로 인상해 3일 연속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나흘째 급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언제든 다시 절하할 수 있다는 관측이 팽배하다.

서울 명동의 환전소.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서울 명동의 환전소.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중국 속셈은? ‘수출경쟁력 상승’
중국의 기습적 ‘환율 공격’에 전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실물시장도 요동쳤다. 금값이 오르고 원유값은 떨어졌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동반 추락했다.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절하조치를 발표한 지난 8월11일 원·달러 환율은 15.9원 급등(원화가치 하락)하며 1179.1원을 기록했다. 이튿날에는 11.7원 오른 1190.8원으로 마감했다. 이는 2011년 10월6일(1191.3원) 이후 3년10개월 만의 최고치다. 위안화 절하 충격이 다소 완화된 지난 8월13일에는 오히려 미국 금리 인상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원·달러 환율이 1174.0원으로 16.8원 급락했다. 다만 17일 이후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180원대에서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신흥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덩달아 원화 값도 곤두박질쳤다. 그 충격으로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와르르 무너졌다. 국내 기관들은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달러 강세로 외국인들은 ‘셀 코리아’를 외치며 한국시장을 떠났다. 불안감을 느낀 개미들도 매도 행렬에 동참했다. 넘쳐나는 ‘팔자’ 주문에 한국 주식시장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처럼 주변국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린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해 ‘시장친화적 통화정책’과 ‘미국 금리 인상 대비’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중국정부는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금리를 3차례나 내리고 막대한 자금을 풀었다. 효과는 미미했다. 중국의 7월 수출은 전년대비 8.3%나 감소했다. 금리인하, 재정투입 등에 이어 중국이 최종적으로 위안화 평가절하 카드를 꺼내든 결정적 이유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중국제품의 달러 표시가격도 내려간다. 중국업체 입장에서는 수출경쟁력이 올라가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달러 표시가격으로 수출하면 환전 후 중국기업의 수중에 떨어지는 위안화 금액이 늘어 수출 채산성도 개선된다.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수입을 줄이는 방식이다. 일본이 지난 3년 간 엔화를 60% 가까이 평가절하하면서 제조업을 부활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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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추가 절하 가능성 있다” 지배적 
시장에서는 위안화 절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금융투자업계는 대부분 위안화가 추가로 평가절하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KDB대우증권은 위안화가 장기적으로 점진적인 약세를 보이며 10% 이상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대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중국정부가 시장 친화적인 환율을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경기여건이 위안화 강세를 뒷받침하기 어렵다”며 “위안화는 계단식의 절하보다 월 0.2~0.5% 이내의 완만한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위안화 변동성이 진정되더라도 주요 통화가치가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진투자증권도 앞으로 위안화 가치가 10% 절하된 달러당 6.80위안 내외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인민은행이 외견상 시장 친화적 환율제도 개편 명분을 제시했지만 암묵적으로 위안화 평가절하를 일정부분 유도해 수출경기 회복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며 “지난해 3월 위안화 환율변동폭 확대조치가 위안화 약세 유도정책으로 해석되며 시장환율이 올랐듯 이번 위안화 환율제도 개편조치도 당분간 시장환율 상승세를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계 투자기관인 노무라는 위안화가 올 연말 6%가량 절하돼 달러당 6.60위안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을 전제로 올 연말 원·달러 환율전망치를 60원 올린 1215원으로 추정했다. 내년 말 원·달러 환율전망치는 종전 1140원에서 1200원으로 올려 잡았다.

또 위안화가 올 연말까지 달러당 7.45위안까지 상승해 약 20%가량 절하되는 ‘위험 시나리오’를 전제할 경우 연말에 원·달러 환율이 137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점쳤다. 보고서의 공저자인 권영선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5%로 유지하되 위안화 절하영향을 가정해 내년 전망치를 3.2%로 0.1%포인트 낮췄다.

위안화 추가 절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있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의 위안화 절하는 경기부양 차원도 있지만 환율제도 변화에 중심을 뒀다”며 “최근 연속적인 절하에 나서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은 만큼 무리하게 추가 절하를 단행하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조사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데이비드 리스 이코노미스트도 “중국 위안화가 추가로 절하될 것 같지 않다”며 “(현재는) 중국 위안화 절하 여파로 아시아 외환시장이 휘청이고 있지만 아시아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가 경제 안정화에 따라 한 방향이 아닌 양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마쥔 인민은행 수석연구원은 “(3일간의)위안화 평가절하로 보다 시장 중심적인 가격책정을 하게 되면서 위안화가 갑작스럽게 급등락할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며 “(인민은행이) 앞으로 시장에 개입하더라도 위안화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환율전쟁을 일으키거나 동참할 의도가 전혀 없다”며 “앞으로 중국경제 회복의 동력은 내수에서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