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이따금씩 지인들이 “사회적기업 제품이라기에 샀다”며 선물을 준다. 과자나 꿀 등 먹거리에서부터 작은 인테리어소품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사회적기업이 생산해낸 제품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나 별도의 유통망을 통해 직접 찾지 않으면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던 사회적기업 제품들. 하지만 이제는 가까운 편의점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사용하는 시대가 온 셈이다.
◆정부 주도 아래 늘어나는 사회적기업
지난 2007년 7월 정부가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시행하면서 8년 동안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으로 활동 중인 인증 사회적기업은 전국적으로 총 1423개에 달한다. 서울에만 247개, 경기도에 228개가 있고 세종특별자치시(3개)를 제외한 광역시와 도별로 적게는 39개, 많게는 90개의 사회적기업이 존재한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 본격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2008년 말 고용노동부의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이 218개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각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예비사회적기업’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지난 10월 말 기준 예비사회적기업은 지자체 지정 1300개, 정부부처 지정 107개로 중복되는 19개를 빼면 총 1388개다. 정부와 지자체가 총 2811개의 사회적기업을 지정한 셈이다. 이런 사회적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는 총 3만2485명이며 이 가운데 장애인·노인·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이 1만8971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사회적기업이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사회적 취약계층을 많이 고용하는 기업’으로 통용된다.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없는 성장이 구조화되고 사회서비스의 수요 등이 증가되는 상황에서 유럽의 사회적기업지원 제도를 벤치마킹하며 시작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1999년 시작된 공공근로민간위탁사업을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지원의 시작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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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공무원과 예비사회적기업인, 자원봉사자들이 지난달 6일 세종시 세종시청 조치원청사에서 지역내 사회복지시설과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전달할 김치를 담그고 있다. /사진=뉴스1 장수영 기자 |
하지만 사회적기업은 단순히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킹보드재단(King Baudouin Foundation)의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의를 인용해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기업이 아니더라도 이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 사회적기업으로 간주할 수 있다.
킹보드재단은 사회적기업을 ‘미숙련 근로자를 노동시장에 복귀시키기 위해 시장과 비시장자원을 모두 활용하는 기업활동체’로 정의하고 ‘넓게는 비록 취약계층을 고용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단체도 포함한다’고 명시한다. 사회적기업이 취약계층 고용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지원 없는 ‘북미형 모델’도
우리나라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하며 사회적기업의 범위를 단순 일자리 창출보다는 넓게 설정했다.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게도 사회적기업 인증자격이 부여된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현재 사회적기업을 ▲일자리 제공형 ▲사회서비스 제공형 ▲지역사회 공헌형 ▲혼합형 ▲기타형 등으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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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미국형 모델은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차원의 명문화된 지원이 없다. 따라서 유럽형에 비해 다양한 모델의 사회적기업 모델이 존재한다. 기술이나 경영혁신을 통하거나 혹은 공유경제 활성화를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특별한 인증이 없더라도 사회적기업의 범주에 포함된다. 물론 일반기업이 많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한다고 해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회사의 목적 자체가 사회공헌에 입각해야 한다.
실제 사회적목적 실현을 위한 비즈니스를 하거나 취약계층을 고용하지 않고 수익창출 비즈니스만을 추구해도 사회적기업의 범주에 포함되는 사례가 있다. 지난 2008년 타계한 배우 폴 뉴먼이 설립한 식품회사 ‘뉴먼즈 오운’이 대표적인데, 이 회사의 사업은 그 자체가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은 없지만 ‘매년 모든 수익금을 기부하고 재투자를 받는다’는 경영원칙 하나만으로 사회적기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회사는 별도의 정부지원 없이 유가증권 발행이나 펀드 조성 등으로 자금을 조달했는데 사회적기업으로 평가받아 각종 민간재단으로부터 손쉽게 투자유치를 받을 수 있기에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활발한 기부·자원봉사 문화와 사회공헌을 자선이 아닌 투자로 보는 사회적 인식 등이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기업을 육성시켰다”며 “정부지원보다 시장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사회적기업 육성에 더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북미형 모델의 사회적기업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비 코퍼레이션’(비코프) 인증을 받은 딜라이트, 쏘카 등이다. 비코프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B랩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수여하는 인증마크로 기업의 비즈니스를 지배구조, 근로환경, 지역사회 기여도, 환경친화성 등 총 4개 부문에서 평가한다.
이 인증을 받는다고 해서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처럼 세금감면이나 지원금 등의 혜택을 얻지는 않는다. 다만 투자자나 소비자가 ‘좋은 기업’으로 인식하면서 투자유치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아직 국내에서의 인식은 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하지만 해외투자 유치 시에는 이미 상당한 어드밴티지가 있다는게 업계의 전언이다.